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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일본영화들 - 쿠로사와 키요시 감독 [밝은 미래], [도플갱어], [회로],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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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56 조회3,4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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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사와 키요시 Kiyoshi Kurosawa

akarui_mirai.jpg[밝은 미래] Bright Future 2003 ★★★1/2

오다기리 죠, 아사노 타다노부, 후지 타츠야 출연.

[밝은 미래]를 처음 봤을 때 쿠로사와 키요시의 다른 작품들보다 월등히 앞서 있는 영화임을 쉽게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히로키 류이치의 [바이브레이터],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 히라야마 히데유키의 [아웃!] 등과 더불어 갇힌 현실 속에 사는 일본인들의 절망과 불안을 다루면서 일본사회를 두려운 마음으로 비관하는 작품들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니무라 유지(오다기리 죠 역)는 아리타 마모루(아사노 타다노부 역)와 함께 물세탁 공장에서 일합니다. 그들은 희망이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의 오해 때문에 마모루가 해고당합니다. 사장은 마모루가 자신을 죽일 생각이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장의 집을 찾아간 유지는 살해당한 사장의 시체를 보게 됩니다. 그의 곁을 떠나게 된 마모루와 헤어지고 유지는 혼자가 됩니다. 마모루가 남긴 것은 해파리 한 마리뿐이었죠.

유지는 해파리를 마모루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감옥의 마모루를 찾아가 풀려날 때까지 20년을 기다리겠다고 하죠. 하지만, 마모루는 자살합니다. 유지에게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동하라는 손가락 표시를 한 채 말이죠. 의지할 데라곤 그밖에 없었던 외로운 유지는 마모루의 아버지(후지 타츠야)가 경영하는 전자제품 수리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죽어가는 해파리를 살리기 위해 먹이를 준비하던 유지는 개천에 해파리의 먹이인 새우를 뿌립니다. 어느새 해파리들은 도쿄 전역에 퍼지게 되고 사람들은 해파리의 독 때문에 걱정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신의 유일한 벗마저도 결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처지임을 알면서도 유지는 그 해파리들에게서 희망의 미래를 봅니다. 그리고 그는 거리에서 방황하는 7명의 10대 강도들을 만나죠.

절망 속의 삶을 살기는 젊은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마모루의 아버지가 죽은 마모루의 환영을 향해 용서를 구하고 진정으로 그를 떠나보내려 하는 것에서 미래를 찾고자 할 때 영화의 마지막 5분간은 7명 소년의 우울한 롱테이크에 바쳐집니다. 이것은 다시 한번 [밝은 미래]의 역설적인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하고 관심없는 이 7명의 소년은 언젠가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될 것이고 곧 어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대한 키요시의 고민과 관심은 니무라 유지와 아리타 마모루를 통해 투영되고 있습니다. 해파리처럼 우리 모두는 주위를 밝게 하진 못해도 자신만은 밝게 빛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하고 감독 쿠로사와 키요시는 대답하고 있죠.

키요시는 절대 공포영화의 귀재가 아닙니다. 그에게서 '공포'만을 기억하는 것은 반쪽짜리 이미지를 보는 것입니다. [큐어]도 [강령]도 [회로]도 지나치게 과장되어 기억된 것일 뿐입니다. 괴팍하게 만들어진 [도플갱어] 역시 키요시에겐 범작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그는 아직도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에게서 진정한 '걸작'이 나오기 전까지 [밝은 미래]는 그의 99년 작 [거대한 환영]과 함께 가장 앞에 놓여야 할 걸작입니다.


doppelganger.jpg[도플갱어] Doppelganger 2003 ★★1/2

야쿠쇼 코지, 나가사쿠 히로미, 에모토 아키라, 유스케 산타마리아 출연.

[도플갱어]는 괴짜 같은 작품입니다. 특히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의자를 가지고 지방에 있는 한 기업체로 가는 도중에 벌어지는 후반 30분은 괴상한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죠. 자신의 분신을 죽이고 떠나는 이 여행의 결말은 처음부터 가지 말았어야 할 길이었다는 것인데요. 묘하게 코믹하고 묘하게 잔인하면서 괴담 같은 스토리를 전개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환영인 '도플갱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 때문에 키요시 특유의 화면분할이 이 작품에서는 더욱 매력적으로 사용되었고,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정말 대단한 영화였지만, 주인공 하야사키(야쿠쇼 코지 역)가 마지막에 인공지능의자를 바다로 던져버리고는 우연히 얻게 된 2천만 앤을 가지고 유카(나가사쿠 히로미 역)와 함께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분신을 통해서 결국 진정한 나를 되찾게 되었다는 결론인데 역시 이런 것은 뛰어난 걸작으로 보기엔 좀 한계가 있었던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도플갱어'라는 매력적인 컨셉을 너무 가볍게 다룬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죠. 마지막 엔딩에 쓰인 음악처럼 장난스럽게 표현된 것이 혹시 영화를 심각하게 보지 말아달라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키요시가 보여준 절제된 작품의 맛은 좀 없었던 것 같아 실망스러웠습니다.


kairo.jpg[회로] 回路: Pulse / Kairo 2001 ★★★

야쿠쇼 코지, 후부키 준, 가토 하루히코, 다케다 신지, 아소 구미코, 코유키, 마츠오 마사토시 출연.

2001년도에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새로운 세기를 맞아 감독들의 집중력이 발휘된 해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왕성한 활동으로 최근 일본영화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력자 쿠로사와 키요시는 애매한 [강령]이라는 작품을 뒤로하고 2001년에 '쇼크'를 가져온 영화 [회로]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공포라기보다는 SF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형식의 공포영화'라는 표현이 유행했는데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링]에 대한 열풍이 식지 않았던 시기여서 공포 쪽으로 몰고가는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회로]는 인터넷 속으로 하나씩 사라지는 인물에 대한 묘사와 결국 바다에서 생존자를 찾아 떠다니는 마지막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인류의 미래에 차가운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초반의 공포심을 심어주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점차 거대한 화두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이 공포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흥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키요시의 작품 경향을 이해한다면 늘 그렇듯 정형화된 틀을 유지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복합적인 여운을 주는 작품의 묘미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코유키와 아소 쿠미코가 나오는데요. 이 두 여배우는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들입니다. 코유키는 [라스트 사무라이]에 출연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모양입니다. 일본의 니콜 키드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구요. 아소 쿠미코는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전형적인 미인형 외모인데요. 분주한 활동만큼이나 좋은 작품을 하루속히 만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eance.jpg[강령] 降靈: Seance 2000 ★★

야쿠쇼 코지, 후부키 준, 쿠사나기 츠요시, 키시베 이토쿠, 키타로우, 이시다 히카리 출연.

[강령]은 죽은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영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인 주부 준코가 우연히 남편이 유괴한 소녀를 보살피면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려는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소녀에게 뜻밖의 일이 닥치면서 이들 부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죠.

매우 진지하고 동굴을 탐험하듯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영화는 생각과는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는 듯 보입니다. 가방 속에 들어가 있던 소녀는 정상적인 아이의 행동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획을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에 비해 준코는 특별한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영화에서 그녀는 남자에 의지하는 약한 여자일 뿐입니다. 애매하게 끝내는 결론 역시 윤리의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지가 전달될 시간을 갖추기 어려운 조건에서 서둘러 끝내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21세기에 들어서서 보여준 키요시의 작품들은 다소 기복을 보이기는 했지만 꾸준히 문제작들을 내놓으면서 진지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를 누리는 대표적인 일본의 스타감독 답게 그의 명성이 더욱 확고해질 걸작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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