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미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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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7:07 조회3,1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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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감독. 김혜수, 김태우 출연.
우선 매혹적인 영상미가 돋보였다고 하는데 별로 매혹적이지 않았고, 아리송한 이야기라고들 했지만 한 개도 아리송하지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호한 이미지들은 모두 지수(김혜수 역)와 석원(김태우 역)이 풀어놓는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비주얼은 두 인물이 겪는 선형적이지 않은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고 외로움과 슬픔을 소유한, 우울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로 구체화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매혹적이며 인공적인 공간이 돋보이는 영화라고 말할 때는 그 이면에 감독이 구상한 세심한 이야기들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리송할 게 하나도 없게 됩니다.
바노와영화는 감독의 전작인 [로드무비]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비주얼을 강조한 감독의 의도가 옳았는지는 쉽게 판단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뭔가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주변의 고리타분한 주장들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고유의 스타일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게 특히 좋은데요. 이 감독이 언제까지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아무래도 한국영화 주류의 강한 압박을 받으면서 힘겨워질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논쟁만 있고 시장에서 버림받는다는 것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얼마나 감독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주얼에만 정신 팔려 고독한 인물들의 내면을 전혀 들어가 보지 못한 당신. 생략과 압축으로 인한 설명의 부족으로 시원한 결론을 듣지 못해 불만이었다는 당신. 영화를 아니꼬운 눈으로 비난하기에 앞서 한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뭐가 풀리길 기대하면서 보는 게 아니라 꿈을 꾸듯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보라는 것입니다. 보다가 최면에 걸리든, 잠에 들든, 김혜수 몸만 보이든 관계 없이 느낄 수 있는 부분까지만 자기 것으로 하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이해가 안 된 것은 후에 다시 보면서 다른 시각을 가져보고 하는 식으로 감상하는 겁니다. 뻔한 장면도 없고 닭살 생기는 부분도 없는데 불편할 것도 없구요. 보면 볼수록 더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요?
영화가 처음부터 분명히 따라갈 수 있게 기억의 지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관념이야말로 현실주의자들의 한계이며 자기 모순입니다. 혼선을 주지 말고 이야기를 명확히 해달라는 주문은 김인식 감독에게 할 것이 아니라 고다르, 레네와 같은 60년대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얼굴없는 미녀]의 모호성을 비판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누벨바그를 비판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모순이 안 생깁니다. 알랭 레네의 [지난해 여름 마리앵바드에서] 같은 영화에 비하면 [얼굴없는 미녀]는 관객에게 친절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모호하고 생경하다며 누벨바그 작품들을 보고 실패작 운운하는 한국의 평론가들은 찾아보기 힘들죠. 그러면서도 [얼굴없는 미녀]에게는 잘난 체 하느라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놨다며 자신있게 "NO"라고 밝히는 용감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영화는 굉장히 자유로운 것이고 인간의 상상은 무한하다는 걸 글만 잘 쓰는 평론가들께서 잊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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