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일본영화들 - 오시이 마모루 감독 [이노센스]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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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52 조회3,3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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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 イノセンス / Innocence: Ghost In The Shell, 2004 ★★★★
각본 : 오시이 마모루 (Mamoru Oshii)
감독 : 오시이 마모루 (Mamoru Oshii)
미술 : 타네다 요헤이 (Yohei Taneda)
원안 : 시로 마사무네 (Masamune Shirow)
음악 : 카와이 켄지 (Kenji Kawai)
평론가 정성일은 영화 [엘리펀트]의 첫 장면을 본 순간 걸작임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바노와영화는 말합니다. "[이노센스]의 첫 장면을 본 순간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이 정도의 완성도 있는 아니메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국적의 휘황찬란한 간판으로 뒤덮인 거리와 극도로 발전한 정보화사회. 2032년 붉은 하늘로 얼룩진 네오토쿄엔 아직도 범죄가 끊이질 않습니다. 어느 날 신형 가이노이드가 이상 반응을 일으켜 정치인이었던 소유자를 습격하고 경관들을 살해한 후 스스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살해 당사자가 중요 신분임을 고려해 즉각 공각기동대라 불리는 공안 9과가 개입합니다. 쿠사나기 소좌의 파트너였던 토구사가 이번엔 사이보그 바토와 팀을 이루어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되죠. 그러던 도중 그 가이노이드 제작회사의 출하 검사관이 살해당하는 사건도 터집니다.
가족과 딸이 있는 토구사는 바토의 거침없는 행동에 늘 불만이지만 바토는 아랑곳 하지 않고 가이노이드 이상 현상을 캐내기 위해 야쿠자들의 거처를 습격하고 그들과 불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이노이드 제작회사 로쿠스 솔루스사에 잠입합니다. 바토가 야쿠자의 사무소를 습격하고 곧바로 보복을 받게 되는 식품점 씬에서 만만치 않은 해킹능력의 소유자가 뒤에 있음을 감지한 이들은 로쿠스 솔루스사의 '킴'을 찾아 무국적 도시로 향합니다.
한때 최고의 정보 집약형 도시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범죄 조직의 소굴이 되어버린 에토로후 경제특구의 12세기 유럽의 로마네스크나 이후의 고딕양식을 연상케 하는 수직적 구도감각의 건물들 사이를 해치고 마침내 로쿠스 솔루스사에 들어가지만 의체를 선택한 킴과 조우하는 문제의 장면에서 토구사는 전뇌를 해킹당해 의사체험의 미로에 빠지게 되는데 이걸 미리 예상했던 바토는 킴과 로쿠스 솔루스의 범죄를 확신하게 되고, 회사 네트와 연결해 회사를 장악하고 있던 킴이 시스템을 전력으로 작동하기 전에 은밀히 살아있는 인간의 영혼을 이용해 전투형으로 제작되고 있던 가이노이드를 해체시켜야 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광대한 넷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 문제의 쿠사나기 소좌와 재회합니다. 쿠사나기는 이미 토구사의 의사체험에서 킴이 쳐놓은 시스템의 방어벽을 뚫고 바토에게 2501이라는 숫자를 보여주었죠([공각기동대]의 마지막 장면에서 '2501'은 프로젝트 이름이자 쿠사나기 소좌가 넷 속으로 들어가면서 자신과 다시 만날 때 암호로 사용하기로 바토와 약속했던 숫자가 아닌가!)
그리고 야쿠자를 통해 강제 모집한 아이들의 영혼을 가이노이드에 복제해 왔던 로쿠스사의 비밀이 밝혀집니다. 로쿠스 솔루스의 지시로 야쿠자에 의해 살해된 회사의 출하 검사관은 잡혀온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가이노이드의 윤리코드를 수정하여 가이노이드로 하여금 사고를 일으키게 하고 자살을 하게 함으로써(그리고 '구해줘'라는 소리신호를 입력시킴) 누군가가 아이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는 확신을 아이들에게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좀 더 강력하고 완벽한 로봇을 구현해 보려던 한 회사의 범죄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불완전한 인간, 아직 자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어린 인간의 아이, 그리고 무생물인 인형을 다루는 것과 아이를 기르는 것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치관, 그리고 투명한 장난감 어항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영혼이 존재하는 개(바토가 기르던 가브리엘) 등 생명과 윤리를 둘러싼 철학적 의문들이 혼란스럽게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미래사회를 암울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던 개에게 밥을 주고 딸을 걱정하는 동료를 위로하며, 단지 의체일뿐인 쿠사나기 소령의 몸에 옷을 걸쳐주는 사이보그 바토의 모습을 군데군데 삽입하여 인간이 무엇 때문에 탄생했는지, 어디로 진화하는지, 로봇이라는 또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를 오시이 마모루는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로봇을 인간과 유사한 모습으로 만드는 인간들 자신의 경우처럼 그리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말처럼 인간과 로봇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며, 구분에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사회로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묵시론적 해석을 낳았습니다.
과연 그것이 옳을까요? 중요한 건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사회의 인간은 마치 육체를 잃은 영혼들처럼 그렇게 광대한 넷을 떠도는, 지식을 소유한 정부 소유의 부품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사회도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삶 자체가 숨막히긴 합니다만...
이 아니메의 이야기상 매력을 살펴보면 우선, 첫 장면부터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기억을 그대로 재현해 냅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점의 상공을 배회하던 헬리콥터에서 데이타를 전달받은 바토가 폭주를 일으킨 가이노이드를 잡으러 오는 장면은 [공각기동대]의 첫 장면, 쿠사나기가 가벨 공화국의 대사를 암살하고는 광학위장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그 혁명적이었던 장면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공각기동대]에서 고스트 해킹을 시도하던 범죄자를 잡는 장면은 그게 핵심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노센스]의 야쿠자 습격과 유사하며, 비번날 잠수를 즐기는 쿠사나기의 행동은 그대로 [이노센스]에서 바토의 배 침투 장면에서 인용되고 있죠.
그래픽은 시대가 흘러 더 정교해지고 우수해졌습니다. 바토가 야쿠자를 습격한 이후 전뇌 해킹까지 당하며 보복을 받는 식품점 씬에서 [공각기동대]에서는 한번 써먹기도 힘들었던 줌-업, 전후 트래킹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으며, 축제가 벌어지던 경제특구 도시 장면과 로쿠스사 본부를 진입하던 장면에서의 3D와 2D는 매우 정교해 놀랄 지경입니다. 가와이 켄지의 음악이나, 초반 바토가 가이노이드와 결투를 벌이는 장면에서의 바람을 가르는 음향 또한 매우 인상적이죠.
오시이 마모루는 이미 [아발론]에서 경이적인 이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영화 내내 진짜 현실이란 없었던 그 영화에서 게임을 즐기면서 축적된 정보에 만족하며 진짜 현실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되는 혼돈의 세계를 묘사했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이노센스]는 생명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과 로봇을 어떻게 이해하고 구분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이 아주 모호한, 또 하나의 혼돈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바토와 토구사가 죽은 가이로이드의 감식을 맡은 여자를 찾아간 장면에서 해러웨이라는 이 파란 눈의 감식과 여자는 영화 [이노센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도록 적절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결국, 담배까지 피우며 로봇과 인간의 존재를 연계해 설명하며 충고하던 그녀가 알고 보니 사이보그였다는 점은 이미 인간만이 최고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만큼 이제 '인간'을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겁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토구사는 아버지를 마중나온 딸을 안아주는데 그 아이는 인형을 들고 있습니다. 파란 눈의 무표정한 그 인형을, 가브리엘를 안고 있는 바토가 의미 있게 바라보죠. 인간, 자아를 의식하지 못하는 아이, 인형, 사이보그, 동물이 모두 만나는 기이한 라스트입니다.
사족: [이노센스]의 유일한 단점은 주요 캐릭터들을 통해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철학적 문구들입니다. 거의 1/3 정도로 줄였어야 합니다. 이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도 거의 빼놓지 않고 그 부분을 건드리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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