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재구성 - 충무로여~ 계속 할리우드의 꽁무니만 쫓을 텐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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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08 조회2,6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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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작. 최동훈 감독, 염정아, 박신양, 백윤식, 이문식, 천호진 출연.
나름대로 이름깨나 있다는 평론가들과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호평 일색인 [범죄의 재구성]을 보았습니다. '백윤식'이라는 배우의 존재에 새삼 경탄스러움(거의 알 파치노를 연상케 할 정도의 연기)을 느꼈지만, 대사가 명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아 이야기를 제대로 쫓아가기 어려움을 느꼈다는 것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좀 혼란스럽더군요.
왜 김선생(백윤식 역)은 날건달 최창혁(박신양 역)의 제안을 구체적인 검토 없이 덥석 물었을까? 김선생과의 4년 전 인연으로 하나 둘 모여든 건달들은 언뜻 보기에도 신뢰하기 힘들어 보이는데 김선생은 무슨 배짱으로 그들에게 또다시 중책을 맡겼을까? 최창혁은 한국은행을 털고 나오다가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지만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을 어떻게 미리 알고 대비했을까?(터널까지 가기 전에 저지 당하지 않고!) 그리고 고향 땅을 사기로 했던 최창혁은 김선생과 부동산업자가 쳐 놓은 함정을 어떻게 눈치챘을까? 최종적으론 제비가 가지고 달아났던 돈이 어떤 과정으로 최창혁에게 간 것일까?
이 밖에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동거녀인 서인경(염정아 역)을 이상하게 방치해 놓은 김선생과, 최창혁을 그의 형으로 믿고는 처음부터 의심조차 못해본 경찰들의 수사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영화가 혼란스런 건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메세지가 없는 메세지를 주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냥 한번 할리우드의 범죄 영화를 대한민국에서 재구성해본 것 외엔 없지 않나요? 알고 보면 최창혁과 서인경과 김선생이 주로 거주하던 집의 벽지라든지 복도라든지 바닥이라든지 하는 전체 구조가 왜 하나같이 서양식인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어요?
솔직히 이런 시도가 그리 의미 없는 건 물론 아닙니다. 우리도 해보면 할 수 있는 게 많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험일 뿐이고 아류일 뿐입니다. 그건 할리우드라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충무로 학원의 입시공부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셈이죠. 할리우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한국에 꽤 영리하고 훌륭한 영화가 있네"라고 느끼기보다는 아마 "어떤 영화를 리메이크 한 걸까?"라는 반응이 주류일 겁니다. 꽤 흥미진진했고 빠르게 진행되는 여러 상황들이 무척 재미를 주고 있었지만 여전히 변두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할리우드 뒤꽁무니 영화라고 말하면 좀 심한 게 될까요?
아래는 국가대표 평론가 정성일의 글입니다. ***********************************************
“털어먹을 놈이 테이블에 앉았다! 그 자체로 끝나는 거예요. 그 순간에 그거는. 문제는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서 얼매나 공을 들이느냐!” 최동훈이 열일곱 번을 고치고 고쳐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 속 얼매의 대사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딱 그렇다. 일단 입장료를 내고 영화관에 들어와서 스크린 앞에 앉으면 그 자체로 끝을 낸다.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하여튼’ 보게 만든다. 재미 있다. 대사 좋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돌아서면 갑자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섯 명의 사기꾼이 모인다. 이제 막 출소한 최창혁(박신양)은 전과 하나 없는 사기계의 전설 ‘김 선생’(백윤식)을 찾는다. 여기 잡학다식 떠벌이 ‘얼매’(이문식)와 사기결혼 킬러 ‘제비’(박원상), 화폐 위조기술자 ‘휘발유’(김상호)가 가세하고, 김 선생의 정부 ‘구로동 샤론 스톤’(염정아)이 얽힌다. 그들은 ‘드림 팀’처럼 보인다. 그리고 한국은행을 터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누군가 그 시간에 밀고한다. 베테랑 형사 차 반장(천호진)이 사건을 뒤쫓고, 죽은 최창혁의 형 최창호(박신양의 일인이역)를 중심으로 사건의 후반전이 시작된다. 영화는 정확하게 거기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절반을 둘로 나눈 다음 후반전이 전개되는 사이에 전반전이 에피소드별로 퍼즐 맞추듯이 나열된다.
머리와 싸우는 영화가 아니라 눈을 흘리는 영화다
연기 앙상블은 감칠맛나며, 백윤식은 거의 숨막힐 정도이다. 박신양은 일인이역을 지나치게 뽐내고 있으며, 이문식은 대사의 달인이다. 염정아는 처음으로 피와 살을 가진 인형이 되었으며, 박원상과 (카메오로 출연한) 임하룡조차 빛이 난다. 다만 천호진은 항상 오버하거나 2퍼센트 부족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인용하자면) 카프카 아세요 이 영화에서 정말 좋은 것은 대사이지만, 가장 나쁜 것은 이야기이다. 부조리하다는 말이다.
최동훈은 대사를 갈고 닦기 위해서 공을 들였지만, 이야기는 대충 흘러간다. 우선 그 정도의 아이디어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은행이 털릴 것 같지 않다(1996년 한국은행 구미지점 당좌수표 위조사건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다는 이 대목은 이 영화에서 가장 대충 찍은 장면이다). 그건 영화라 그렇다 쳐도, 장님이 아닌 다음에야 앞에 가던 차가 터널에 멈춰 서서 사람을 갈아치우는 동안 뒤에 오던 경찰 차가 ‘시침 뚝 떼고’ 정말 앞서 갈 수 있을까 얼굴을 다 뜯어고치는 성형수술을 하고 난 다음 그렇게 빨리 형 노릇을 하기 위해 회복될 수 있을까 (아! 지면이 부족하다) 그 질문을 한 다음 비로소 ‘범죄를 재구성’한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트릭은 그 엉성한 이야기로 관객을 상대로 최(동훈) 선수가 접시를 돌리는 것이다. 참, 접시는 사기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대사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플래시백은 구조의 필연성이나 미학적 이유, 혹은 장르의 컨벤션이나 두뇌게임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단 하나, 보는 내내 이 치명적인 약점으로부터 눈을 돌려 머릿속에서 이야기 전체를 다시 짜 맞추는 데로 정신 팔리게 만드는 데 있다. 게다가 영화가 중간에 시작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야기의 중간을 논리적으로 따져 볼 겨를이 없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머리와 싸우는 영화가 아니라 눈을 홀리는 영화다. 눈은 항상 부주의하고 비논리적이며 우매한 감각이다.
그렇게 재구성이 끝나고 나면 서둘러 정리하는 이 영화의 엔딩은 갑자기 따분해진다. 사연은 구구절절하고, 벌려놓은 사건에 이유를 갖다 대기에 급급해진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차 반장을 끝내 웃음거리로 남겨놓고, 최창혁과 ‘구로동 샤론 스톤’이 새로운 사기를 시작하는 에필로그이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번 다음에도(50억원!) 왜 계속 접시를 돌려야 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접시돌리기는 취미인가, 운명인가 최동훈은 그게 하드보일드 장르 영화의 ‘쿨한’ 멋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순간, 형을 위한 복수극이라는 윤리적 중언부언은 무의미해지고, 남는 것은 접시밖에 없다. 거사를 앞두고 말한다. “청진기 대 보니까 진단이 딱 나온다. 시추에이션이 좋아.” 그래서 김 선생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치료이다. 재구성해보면 할수록 이 영화는 정말 ‘시추에이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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