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 태극기 휘날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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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09 조회2,6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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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2003년작. 강우석 감독, 안성기, 설경구, 정재영 출연.
1968년, 참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이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물론 가슴 아픕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상을 정확히 밝혀 역사를 바로 세우고 그분들의 명예를 회복해 줘야 하겠죠. 영화는 꽤 리얼했구요. 허준호가 상당히 오버했지만 다른 배역의 연기는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거칠었던 실상을 강조하려다 보니 매우 역겨운 장면들이 많았는데,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모르겠네요.
최근에 극기훈련 한다며 해병대에 입소하는 직장인 단체가 많은 것 같고, 마치 정신력 강화를 위해서 군대식 훈련이 필수적인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 구조상 [실미도]에서의 훈련 장면이나 폭력 장면이 꽤 진지하게 읽혔을지는 모르나 바노에겐 아주 따분하고 지저분하게 보였거든요. 차라리 그 지경이 됐으면 죽는 게 낫지 개만도 못한 꼴 당해가면서 왜 그런 훈련을 인내하고 견딜까요? 근무지를 이탈해 한 여성을 강간한 부대원들의 목숨과 인권은 마치 대단한 것이나 되는 것인 양 나오지만 정작 강간당한 그 여성은 그냥 아무 예기도 없고 버려지더군요.
실미도에 끌려갔던 그 사람들, 그래요, 명예회복 하세요. 하지만, 이 영화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인권유린과 권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은 얼마든지, 어디에서건 발견할 수 있거든요. 현재 우리 사회 모든 집단의 내부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참담한 악습과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답니다. 가까운 것은 외면한 채, 마치 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나 되는 것 같은 먼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며 인권을 위하는 척하지 말자는 거죠. [공공의 적]에서 감독은 마치 실미도 교관이 부대원들에게 가한 것과 비슷한 무지막지한 폭력을 그대로 관객에게 하지 않았던가요?
과거 실미도에서 벌어진 훈련 방식과 지금 군대의 훈련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왜 '유격'이라 해서 올빼미들이 설치는 훈련 있잖습니까? 거기서 군인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죠. 공비나 간첩으로 몰리는 상황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버젓이 색깔론 제기하는 사람들 보세요. 한둘인가요? 모 대학 교수는 최근에 간첩 혐의로 잡혔다가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죠. 정치는 다른가요? 소문 안나게 덮고, 뒤집어 씌우고, 또 그것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검찰의 칼날을 들이대고, 죽은 권력에만 손대고, 살아 있는 권력에는 아부하고... 뭐 달라진 거 있습니까?
다시말해서, 한국이라는 지극히 한정된 세계의 과거 어느 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사고의 영화에 나른해졌고, 무감각해졌고, 지루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반성이 아닌 추억으로, 복합적인 현상이 아닌 단순논리로 접근하는 데에는 찬성할 수도 없고 집중할 수도 없었습니다. 실미도 부대원 31명 보다는 한 명의 강간당한 여성이 더 불쌍해 보였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실미도]보다 더 지루하게 본 영화가 있습니다. 1000만 관객을 울린 또 한 편의 명작(?)...
더 오래전 이야기인 [태극기 휘날리며] 2004년작. 강제규 감독, 원빈, 장동건, 이은주 출연.
폭탄이 터집니다. 여기저기 시체들이 나뒹굽니다. 흙과 땀이 뒤범벅된 군인들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합니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하지?" 그러나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친구가 죽고 형이 죽고 동생이 죽고 약혼녀가 죽습니다. 그래요. 매우 슬픕니다. 그리고 장엄하고 엄혹하고 엄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료해 집니다. 왜냐구요? 한국전쟁을 또다시 이렇게 재탕삼탕식으로 재현하니까 그렇죠. 과거의 전쟁영화들과 달라진 건 스케일이 커진 것뿐입니다. 결국, 전쟁 때문에 형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으로 됐다 이거 아닙니까? 그리고 "가족이 갈라지고 약혼녀가 죄없이 죽어가야만 했다. 자~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이 얼마나 비극이란 말이냐?"라는 생각의 150분 확장판이 아니던가요?
관객 1000천만 시대, 이거 위대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평소에 극장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던 어르신네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표를 사고 자리를 잡고 앉아, 핸드폰 소리로 떠들썩한 젊은 사람들과 같이 영화를 봤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진보입니다. 그런면에서 한국영화산업의 현주소를 애써 무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일사불란한 일체감, 전근대적 남성에 의한 가부장제, 할리우드 뒤치닥거리즘 등은 결코 새 시대에 걸맞은 대한민국 영화상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화려한 오락영화나, 기발하고 재치있는 코메디물이 흥행의 선두에 있는 게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역대 흥행 50위권 안에 절반이 훨씬 넘는 작품이 아니메인 일본이라는 나라, 얼마나 자연스럽고 솔직한가요? 그만큼 아니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죠?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의 1/4을 극장에 불러 모을 만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일까요? 우리가 아직도 1950년과 1968년의 그 암울했던 시절의 사회를 스펙터클하게 고발하고 물량과 인원을 쏟아부은 채 그 비장하지만 장대한 화면에 입 벌리고 감탄이나 하고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단 말입니까?
홍보에 휘둘리고, 전근대적인 관념과 일사불란한 단결심, 좋은 영화 보기 컴플렉스 등에 휘둘린 1000만이나 되는 관객이 여전히 한국 영화에 단단한 관객층으로 자리 잡고 있는 한, 제2의 강우석, 강제규 감독이 끊임없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런 종류의 몇 개의 영화가 일자리 수만 개를 창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등의 경제적 효과만을 강조하는 논리가 영화판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고양이 발톱만한 크기의 나라와 그 발톱의 때만큼의 성숙도를 가진 나라가 호랑이 흉내를 내려하고, 호랑이처럼 사냥하고 호랑이처럼 자고 호랑이처럼 행동하려는 것도 한두 번입니다. 아직 밀림의 법칙도 모르고, 나무도 못 오르는 고양이가 호랑이 옷을 입고 눈썹만 브이자로 하고 집을 나와 숲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숲 속의 동물들이 겁먹고 도망가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밀림에서는 다른 동물들과 경쟁하고 다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존법칙을 모른 채 밀림에 들어가면 다른 동물의 밥이 되거나 우스갯거리가 될 수밖에 없지요. 이런 영화로 할리우드에 대항하겠다구요?
사족1 : 두 영화 모두 [이중 간첩]이나 [쉬리]와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중에서도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말입니다.
사족2 : 두 영화 모두 생각보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지 못했습니다. 안성기는 너무 평범했고 원빈이나 장동건은 오버맨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설경구는 이름값을 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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