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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영화 : 봄 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1/2 사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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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10 조회3,1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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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springagain.jpg2003년작. 김기덕 감독. 하여진, 김종호, 서재경, 김영민, 김기덕, 오영수 출연.

우선, 이 작품, 1편 [봄]만 보더라도 꽤 아름다운 영상으로 정성들여 제작된 영화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어린 동자와 스님, 단 둘이 거처하는 호수 위에 떠 있는 절을 배경으로 삶의 반복, 고통과 죄의식의 반복이 형상화되는 영화죠. 세상은 뒤틀어져 있고, 날로 욕망은 솟구치는데 물 위에 떠 있는 곳에 살아서 꼭 나룻배를 통해서만 속세와 통하는 구조라 해서 고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문제는 극복인데요.

물가에서 놀다가 뱀과 개구리와 물고기에 무거운 돌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재미에 빠져 있는 동자승은 이미 2편 [여름]의 잘못과 3편 [가을], 4편 [겨울]의 고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봄]은 영화의 시작이자 전부입니다. [여름]이 저질러 놓은 잘못은 노승 밑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겪은 스님이 할 수 있었던 것인지, 또 [가을]에서 결국 속세로 떠났던 그가 하필이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죄까지 저지른 채 도망와야만 했는지, 이야기가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김기덕 감독이 죄의식을 불교의 고행을 통해서 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입적한 노승이 사라진 빈 절터에 다시 돌아온 장년이 된 [봄]에서의 동자승은 관세음보살상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리고 봄] 편에서 다시 어린 동자승이 물고기나 개구리를 괴롭히는 이 반복적인 행태를 지켜보는 바노에겐 "그렇다면 내가 가진 죄는 어떻게 용서되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 스님의 예언 같은 말 "네가 괴롭힌 그 생물들 중 하나라도 죽는다면 넌 평생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게 될 것이다."은 이미 정해져 있는 고행의 길을 향해 순응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뜻으로 읽혀야 할까요? 과거에 하나라도 잘못을 저지른 게 있다면 언젠가는 그 죄의 무게가 더욱 커질 것이므로 매일 그것을 반성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서 구원을 받자고 생각해야 하나요?

세상은 반복되고 죄는 사람을 달리해서 계속 돌출되는데(그리고 봄 편) 과연 무엇을 위해 죄를 구원받아야 하는 것인지 영화는 헛갈리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나만 십자가가 되었든, 관세음보살상이 되었든 짊어지고 산에 오르면 죄는 씻겨지고 나는 구원 받는 것인지... 어린 동자승이 다시 생물들을 괴롭히는데 그것은 단지 멀리서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나와 상관없는 개별적인 책임의 문제인지... 왜 스님 밑에서 수련한 동자승은 아무것도 스님에게서 배우지 못하고 욕망과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는지... 어쩌면 감독은 "불교의 수행은 불필요한 것이며 그래봐야 인간은 어차피 잘못을 저지르면서 사는 것으로 그 죄의식을 떨쳐 버리기 위해 고행이라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듯 보이는데, 아닐까요?

다소 애매하고 신비주의에 빠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이어서 김기덕의 최고작이라 할만한 [사마리아]가 탄생합니다.
 
 

사마리아 Samaria (2004)

samaria.jpg2004년작. 김기덕 감독. 곽지민, 한여름, 이얼 출연.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 원조교제로 모은 돈을 채 써보지도 못하고 재영이 죽었습니다. 재영의 분신이라 할만한 여진이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돈을 다시 돌려주기로 하고 그동안 재영이가 만났던 남자들과 다시 성관계를 갖습니다. 의아해 하는 남자들에게 여진은 오히려 돈을 주죠. 그런데 그런 관계를 갖는 광경을 아버지가 우연히 보게 됩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충격적이었겠죠.

아버지는 아침에 딸을 학교로 데려다 준 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를 밟기로 작정합니다. 핸드폰도 꺼놓고 집념이 대단합니다. 흥미진진해지며 영화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뒤를 따르는 카메라...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수많은 남자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인내하면서 감정을 억누르던 아버지는 끝내 딸과 직접 성관계를 하는 어떤 남자를 목격하게 되면서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딸을 지킬 수 없었던 아버지의 유일한 선택은 그것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여진을 죽여 기적(구원)을 포기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여진의 꿈 속이었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딸은 혼자 남게 됩니다. 아버지는 자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복수한 사람들과 동시대적인 죄책감을 가졌을 것이고 그로부터 딸을 혼자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비참한 이별입니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돌볼 수 없습니다. 재영에 대한 위로로 시작한 희생이었지만 결과는 파국으로 찾아 왔습니다.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물음. 김기덕은 변했을까요? 적어도 '엽기'가 사라지거나 억눌러졌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여진이 취한 행동 자체가 엽기적으로 보이지만 미쳐서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보단 낫죠. 스스로 자살한 재영이가 엽기적으로 보이지만 맨몸으로 수족관에 들어가 칼로 몸을 그어 수족관을 온통 핏물로 만드는 것만큼 엽기는 아니었습니다.

[나쁜 남자]는 그야말로 창피한 수준의 졸작이었습니다. [해안선]과 [수취인불명]은 이야기의 허약성을 드러낸 영화였습니다. 그 이전의 작품들은 영화가 아닌, 성격을 규정하기 어려운 매체였습니다. 그러나 [봄 여름...]과 [사마리아]에서 감독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적어도 작품을 잡품답게 갈고 닦는 기술에 있어서의 향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이 감독 김기덕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는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감독의 변화는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물음에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김기덕은 변했는가?'라는 것에서 '김기덕'이란 곧 그의 사상성입니다. 희생하고, 용서하고, 구원하고... 누가 무엇을 위해 그래야만 하는가? 그곳에 정작 희생은 누구의 몫인가? 여전히 김기덕의 영화에서 여성은 공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마초로 오해받을 만한 김기덕의 신화는 여기서도 계속 됩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시선조차도 일방적인 것이라 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죄'를 행한 것이 아니라 '자비'를 실천한 것이므로, 심판받을 일도 없고 용서받을 일도 없다. 따라서 그 기적 이야기는 그녀에게 소용되지 않는다("아빠는 기적을 믿어?","기적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어"). 딸은 심판과 구원의 이분도식 위에 있지 않으며, 그러기에 큰 변화 속에서도 담담할 수 있었다."

즉, 여진은 재영이가 원조교제를 하면서도 단순한 육체적 관계가 아니라 상대남자와 조금 더 알면서 지내는 사이로 가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재영에게 소리쳤던 부분을 후회하고 스스로 재영이 되고자 '자비'를 배풀은 것일 뿐, 죄를 지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딸을 이해하고 대화하지 않는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라는 거죠.

어쩌면 여자들은 '수동적'으로 남자들에 의해 리드나 당하다가 돈 받으면 주워오고 경찰이 토기몰이를 하면 창문에서 떨어져 죽기나 하고 병원에서는 '오빠'나 찾는 신세인데다가 성관계 몇 번 했다고 몸이 망가졌다는 생각 속에 울어야만 하는데 비해, 스스로 몸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많은 '주체적' 원조교제 남성들도 남자들이고, 딸을 지키지 못한 무능함에 살인까지 저지르고야 마는, 또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주체적' 아버지도 남자들이고 보면, 이런 세상의 논리가 계속되는 한 '페미니즘'으로 보는 사마리아를 향한 시선은 계속 강력한 비판의 힘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어린 딸의 원조교제라는 실체가 있고, 그것을 구원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기대와 복수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원조교제라는 행위 자체에서 여성이 수동적 행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 자체를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것대로 있지만, 남성의 복수가 아닌 여성의 복수로 본다면 더 흥미로울 수 있었을 거라는 거죠.

사족: 영화의 완성도와 매력적인 부분에서 [사마리아]가 [봄 여름...]보다 좋았습니다. 김기덕의 최고작으로 불러도 좋을 듯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가 베를린에서 수상한 뒤 김기덕 감독은 그동안 자신을 비난했던 평론가와 관객이 이젠 자신을 다르게 봐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 모양입니다만, 그런 속내는 좀 드러내지 말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거부감만 주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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