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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사무라이 ***1/2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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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11 조회2,7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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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사무라이 The Last Samurai (2003)

lastsamu.jpg2003년작. 에드워드 즈윅 감독. 탐 크루즈, 와타나베 켄 출연.

한마디로 그 내용이 너무나 감상적이고 진부하다는 점에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가 좀더 색다른 방식의 무용담이라 할 수 있을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에 버금가는 지지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이 엉터리 시대활극이 시작과 더불어 완전히 좌초해버린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가히 모욕에 가깝도록 황당하고 장황하기 그지없는 문구로 (일본은 “지금은 모두가 잊어버린 듯한 가치-명예”,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수 있는 “단 몇명의 용감한 사나이들에 의해 이룩되었다”라는 따위의) 시작될 때, 이 사실은 명확해진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라스트 사무라이>는 일견 전쟁영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서부극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늑대와 춤을>의 기모노 의상 버전이라고나 할까? 톰 크루즈는 영화 속에서 한때 남북전쟁의 영웅이었지만 자신이 몸담은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적의 편에 서게 되는 기병대 출신 장교 네이든 알그렌 역을 맡았는데, 무대 위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이 심사 뒤틀린 주정뱅이는 자신의 전직 상관 조지 커티스가 부하들을 또 다른 학살의 현장으로 동원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해하기 힘든 고약한 반응을 보인다.

알그렌은 몇몇 동료들과 더불어 보기에도 능글맞은 일본 대신에게 고용되는데, 그의 임무는 천황의 군대를 근대적인 방식으로 재조직하는 것. 특히 젊은 메이지 천황은 사무라이 집단의 반란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데, 누군가의 친절한 설명에 의하면 “여전히 미개한 사무라이 지도자의 항명”이라는 것이다. 잔혹했던 인디언 학살의 기억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알그렌은 탁월한 투사로서의 면모를 여전히 유지하는데, 안개 낀 밀림 속에서 미숙한 자신의 부하들이 전멸하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은 완전히 <킬 빌>의 우마 서먼으로 돌변해서는 두손에 칼을 쥐고 싸우다 홀로 살아남아 적진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백인 정착민 여인이 흉악한 야만인들의 손에 납치된다”라는 식의 억류기는 미국 문화 속에서 가장 유서 깊은 허풍쪼가리라고 할 수 있는데, 올해 나왔던 론 하워드의 서부극 <더 미싱>이나 시청률 경쟁을 벌이며 화제를 모았던 제시카 린치와 엘리자베스 스마트의 다큐드라마 등이 최근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라스트 사무라이>는 상대적으로 덜 노골적인 서부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서구에서 온 백인 남성과 그가 열도의 오지에서 만난 타자(他者) 사이에서 벌어지는 좀더 고상한 방식의 대결과 상호전이(相互轉移)의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알그렌은 자신이 전투에서 죽인 무사의 아내에게서 (너무나도 슬픈 눈매의 일본 여배우 고유키가 연기를 했다) 간호를 받는데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그는 일본 술에 탐닉하고 서서히 젓가락질을 배우며 일본인들의 복장을 비웃기도 한다(그는 자신을 경호하는 무뚝뚝한 무사에게 “당신은 사람들이 치마를 입혀서 지금 화가 난거지?”라며 놀려댄다). 하지만 이 미국인 사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사무라이 집단의 수장인 카츠모토이다(와타나베 겐이 연기한 이 인물은 사이고 다카모리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다). 자비로운 부처님 상 아래에서 첫 만남이 이뤄진 뒤 둘의 대화는 벚나무 아래로 이어지는데, 알그렌이 그동안 만난 모든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영어에 능통한 귀족 카츠모토 역시 미국 인디언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는 듯 보인다. 때문에 그는 인디언들과 싸워 이긴 알그렌의 옛 상사 커스터를 또 다른 종류의 사무라이로 평가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 부분부터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가히 “케빈 코스트너주의(?)”라고 할 만한 알그렌의 무미건조한 관찰적 일기 낭독으로 넘쳐난다. “참으로 신비로운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이와 같이 절도있는 삶을 본 적이 없다”라든지 “사무라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식의 명상이 이어진다. 정말 사무라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늑대와 춤을>에서와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전환 계기가 다가온다. 그는 기모노를 걸치고 (할리우드에서는 문젯거리가 아닐) ‘무념무상’의 화두를 깨우치려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무술을 연마한다. 물론 그럼에도 자신은 미국인일 뿐이지만(그는 몇번이고 나뒹굴면서도 싸움걸기를 주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기도 한다).

영화가 이처럼 사전에 정해진 이야기의 흐름을 고만고만하게 따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톰 크루즈는 이 작품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다고 한다. 일본어와 검도를 배웠고, 보도자료에 의하면 일본 역사와 전통극에 대해서까지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는 내용적으로 볼 때 둔하기 짝이 없지만,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액션에 재능이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닌자들의 기습공격 장면은 상당히 즐길 만하고(이 장면은 <늑대와 춤을>에서의 포니족 소탕 장면과 정확하게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사무라이들이 화살을 쏘며 기관총과 맞서는 장엄한 최후의 전투신에서는 장장 반 시간에 걸쳐 충돌과 살육, 말을 타고 죽음의 계곡으로 향하는 슬로모션, 전장에서의 마지막 작별 등을 펼쳐 보인다. 그리고 가히 뉴 에이지적(?)이라고 할 수 있을 헛소리까지! “사람의 운명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고 믿네.” 이쯤 되면 승리한 쪽이 경의를 표하는 것이 다소 신기해 보이기까지 한다.

<라스트 사무라이>에도 어떤 여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여운은 너무나 엉뚱한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의 모델이 된 사이고와 그의 부대가 패배하면서 일본은 러·일전쟁과 중국 침략에 나서게 됐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의 영웅으로 오랫동안 추앙받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실을 여기에서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어쨌든 이데올로기라고 할 만한 것은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한 스펙터클일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배우들이 부도덕한 무기상으로 등장하고 서구화론자들이 악인으로 묘사되며 톰 크루즈라는 할리우드 스타가 천황을 사무라이식으로 훈계하는 것 등 역시 대수롭지 않게 봐넘길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짐 호버먼 / 영화평론가

저는 위 글을 읽고 좀 놀랬습니다. 적어도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일본의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을 옹호할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며, 서구화가 나쁘고 부도덕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짐 호버먼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이 영화를 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해군을 유령처럼 그린 [마스터 앤 커맨더]가 더 색다른 방식의 무용담이라며 사실상 더 높게 평가한 부분에서 실소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호버만은 링컨주의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미국의 남북전쟁은 그들의 선조(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등)들이 이뤄놓은 시스템을 사실상 전복시킨 전쟁이었습니다. 즉, 각 주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없애고 하나의 거대한 통일 국가를 만들려는 링컨과, 공화당의 전신인 휘그당 보수 세력들의 철저한 제국주의적 야심에서 나온 일이지요. 남북전쟁 때 남군에게 행한 링컨과 북군의 노골적인 반인권행위는 지금 부시의 이라크 만행은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니 강조해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죠.

[라스트 사무라이]의 알그렌 대위는 그런 역사의 희생양입니다. 마침, 강력한 제국주의로 성장한 미국이 필리핀에 진주하고 아시아 각국에 힘을 과시하려는 시기였죠. 영화 속 알그렌은 남북전쟁과 인디언 학살의 과정에서 만행을 저지른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런 미국을 저주한 채 주정뱅이의 신세로 지내는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링컨주의자일지도 모르는 호버만에겐 맘에드는 주인공이 아니었겠죠.

게다가 일본에 가서는 천하의 알그렌이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일본 사무라이에게 난타당합니다. 그렇다고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사무라이 집단에서 알그렌이 뭐 제대로 선진적인 문화를 가르치기나 했나요? 오히려 그들의 도를 배우고 왔을 뿐입니다. 교활한 일본정치인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미국 등 다른 선진국 사절단의 모습이 악으로만 보인 것도 사무라이의 근본정신을 깨우치자는 메세지이지 결코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의가 아니죠.

그렇다면,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늑대와 춤을]의 일본판이다! 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에겐 그렇게 보이겠죠. 하지만, 일본과 같은 아시아인이 보기에 감독은 단순히 역사의 큰 물줄기에서 아쉽게 사라져 간 것들 중에 하나를 소개한 것 이상의 큰 관심과 의미를 사무라이로 특징 되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에 쏟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현대 미국인들이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한 동경과 찬양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타란티노가 중국 무협, 이소룡의 액션, 서부극, 일본 사무라이극, 잡다한 B급 갱스터 물들을 소화하면서 터득한 자신만의 세계를 영화 속에 그려넣듯, 일본의 문화와 사무라이 영화들에서 감명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이 진지한 스펙터클을 처음부터 왜곡해서 둔하다고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라스트 사무라이]는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 뭘 알고,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겁니다. 감독이 그러하듯 말이죠. 그런데 올해 초에 뭘 모르 고, 주관적인 시선으로 타 문화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시선을 끌었는데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2003)

losttran.jpg2003년작. 소피아 코폴라 감독. 스칼렛 요한슨, 빌 머레이, 지오반니 리비시 출연.

오기 싫은 나라 일본에 어느 날 툭 떨어진 미국인 2명이 있습니다. 오로지 일 때문에 방문했는데 이들은 이 문화 안에서 온전히 살기 싫은 모양입니다. 소통이 안 된다는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대며 오늘도 그들은 일본인들을 눈 아래로 한참 깔고는 외로움에 몸둘 바를 몰라 합니다.

그러다가 만났죠. 밥 해리스(빌 머레이 역)와 샬롯(스칼렛 요한슨 역)말입니다. 아슬아슬 바람을 피울까말까 고민 고민하던 끝에 영화가 막을 내리는데 여기서 관객은 헛갈립니다. 꽤 진지하면서도 차분하게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그럴듯한 영화처럼 보이니까요. 밥과 샬롯이 일본인 친구들과 만나 토쿄 거리를 배회하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장면은 그런 면에서 인상적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왜 그들과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지는 못할까요?

CF촬영을 하면서 내뱉는 일본인 감독의 우스꽝스런 모습과, 억지 연기를 하는 밥의 떨떠름함이 조화된 그 장면들을 상기해보면 이 작품을 탄생시킨 소피아 코폴라가 얼마나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그녀는 무언가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외부 조건을 원했을 것이고, 그곳이 하필 LA나 플로리다나 뉴욕이 아닌 토쿄로 설정한 것 뿐일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일본이라는 무대는 소피아의 관심 거리가 아니었겠죠. 일본은 그냥 그대로 뭔가 대화도 통하지 않고 답답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두 주인공에게 안개와 같은 역할만 하면 되는 정도였을 겁니다.

그래서 밥은 그보다 키가 작은 일본인들만 보며, 수준 낮은 혀 짧은 영어로 땍땍거리는 일본인만 상대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밥이 미국에 있는 아내가 바닥 장식을 무엇으로 해야하는지 물어보는데 한심하다며 시간낭비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모습도 그다지 와닿지가 않는군요. 그냥 통과의례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아...소피아 코폴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냥 미국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당신들의 나라도 생각해보면 상당히 답답하고 소통하기 어렵답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옳은 것 같으면서도 결코 옳은 게 아닌 것으로 꽉 찬 나라가 당신의 나라입니다. 왜 그곳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고발하고 비판하지 않으시나요? 창 밖으로 보이는 토쿄의 그 화려한 밤거리, 수많은 사람들이 목적도 없이 거의 뜬 것 같지도 않은 쭉 찢어진 눈을 하고 평생 아무 소리없이 사는 모습이 그렇게 무척이나 신기하셨나 보죠?

사족1: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만약 알그렌 대위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일본에서 마지막 사무라이집단과 같이 지낸 것을 회고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면 영화는 망가졌을 겁니다.
사족2: 짐 호버먼은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액션에 능한 감독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마지막 전투씬은 좀 소박하게 보였습니다. [반지의 제왕]같은 스펙터클에 3년간 익숙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요...
사족3: [사랑도...]에서 스칼렛 요한슨이나 지오반니 리비시 등 배우들의 무게감과 서두르지 않고 진지하게 스토리를 이끌어간 연출력의 측면은 이 영화에 힘을 실었습니다. 음악도 훌륭하구요. 그런데 빌 머레이는 별로던데요.
사족4: 아카데미 각본상에 대한 신뢰도 이제 접어야겠네요. 솔직한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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