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1/2 스파이더맨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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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15 조회2,7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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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2004년작. 볼프강 피터젠 감독. 브래드 핏트, 브라이언 콕스, 올란도 블룸, 숀 빈, 피터 오툴 출연.
먼저, [트로이]를 보죠. 아시는 대로 이 작품은 고대 서구문학의 최고봉이라고들 하는 작품들 중 하나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오디세우스 이야기인 <오디세이아>를 영화화한 작품은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수도 없이 많은데 반해, <일리아드>를 영화화한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대화의 소재로 삼지만 정작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 읽은 사람이 많지 않다네요. 저도 읽다가 포기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스 신화 이야기는 그것 자체로 상당한 매력이 있는 분야입니다. 각종 신비스런 지명과, 수백, 수천 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에서 판타지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니까요. <일리아드>의 중심인물인 아킬레우스에 관한 신화도 꽤 재미있는데요. 그의 어머니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인데 제우스나 포세이돈 같은 신들의 청혼을 거절하고 인간과 결혼해 낳은 아이가 아킬레우스입니다. 신과 인간의 결혼은 그리스 신화를 보면 아주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데요. 헤라클레스도 그렇게 태어난 영웅이죠.
보통 영웅들은 거의 불사신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아킬레우스도 어머니가 그를 스틱스 강물에 담글 때 잡고 있던 발목만 아니었다면 최강의 힘을 가진 영웅이었지만 결국 트로이 전쟁에서 파리스의 화살을 발목에 맞고 전사하죠. 영화 [트로이]에서 보면 아킬레우스는 마치 혼자서라도 수천, 수만 명의 트로이군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실력을 자랑하는데 바로 인간이 아닌 영웅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트로이 전쟁에는 파리스도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데요. 그는 그 유명한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스파르타에서 트로이로 데려가게 되었고 그것이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는 최강 아킬레우스를 물리치는데, 아프로디테와의 관계를 제외한다면 파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고대신화와 서양미술은 도저히 갈라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수많은 서양의 미술품에서 파리스의 심판이라고 알려진 아프로디테와의 계약에 관한 그림들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하죠.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인데,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한 헥토르나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트로이의 목마 수법을 예견했던 카산드라 등이 모두 같은 핏줄이죠. 사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자식과 형제들이 수도 없이 얽혀 있어서 계보를 따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우스만 하더라도 아마 자식이 수백 명은 될 겁니다.
[트로이]에서 오디세우스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는 사실 지략이 뛰어나지만 인간입니다. 트로이전쟁을 치르고 귀환하는 10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그리스신화 전체를 통틀어 헤라클레스 이야기 못지않게 유명한 판타스틱한 모험을 하는 주인공이죠. 원래 헬레네를 사랑했던 사람은 파리스보다 오디세우스가 먼저였습니다. 헬레네가 오디세우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에게 가자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말죠. 아무튼,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는데 어이없게 그의 아들에게 죽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가멤논이나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가 비교적 영화 [트로이]에서 인상적으로 나오는데 특히 프리아모스 역의 피터 오툴은 그 존재만으로도 영화의 무게감을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일리아드>에서 자신의 아들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자 홀로 그리스 진영 깊숙이 들어가 아킬레우스에게서 시신을 찾아오는 장면을 [트로이]에서도 변경 없이 그대로 묘사하고 있죠. 프리아모스왕은 트로이전쟁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후에 아킬레우스의 아들에게 살해됩니다.
트로이전쟁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사실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제외하면 트로이전쟁에 관한 남아있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지만 적어도 비슷한 유형의 전쟁이 B.C 1250년경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중심인물들은 대부분 허구이겠지요. 그리스의 역사를 보면 도무지 신화인지 역사인지 구별하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기원전 8세기 이전의 시대상을 문자로 기록해 전해 내려오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유난히 신과 영웅들의 모험담만 난무해 그렇겠지요.
[반지의 제왕]에서 빌려 온 두 배우, 숀 빈과 올랜도 블룸이 원작에 비해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은 오디세우스와 파리스 역을 했는데 여전히 괜찮았고, 브래드 피트는 아킬레우스 그 자체였습니다. [트로이]의 중심이 파리스나 헬레네였다면 훨씬 더 판타지로 흐를 수 있었지만 변해가는 아킬레우스가 강조됨으로써,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적 측면에 시간을 더 할애함으로써 오히려 현실에 가까운 작품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마 볼프강 피터젠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스펙터클을 강조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반지의 제왕]보다 CG의 위용을 자랑할 만한 장면들이 더 많았죠. 3부작으로 해도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피터젠 감독과 <일리아드>를 교묘하게 각색하는 데 성공한 데이빗 베니오프의 생각은 그런 방향으로부터 비켜나 있었습니다.
<일리아드>와 [트로이]는 애초부터 출발이 달랐습니다. 원작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최선이 아니며 그것은 역사에 근거한 정확한 묘사를 해야한다는 부담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원작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행위(로저 애버트), 각 등장인물들의 나이를 비교해가면서 허점을 찾아내려는 시도(네티즌들), 역사적, 철학적 고증의 관점에서 보거나 무리하게 현실과 연결시키는 생각 등은 모두 [트로이]에 대한 과도한 헛발질에 불과합니다. 아니 세상에, 트로이 목마에서 아킬레우스가 나오면 좀 어떻습니까? 트로이 목마가 만들어진 시점에 아킬레우스가 살아 있으면 안 된다는 명확한 역사적 근거라도 있답니까? 그리고 명확하게 액션을 강조할 감독의 의도가 없었음에도 그리스 영웅들을 액션 캐릭터화 했다고 비난하는 애버트의 단견은 또 뭔가요?
[트로이]에서는 신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온전히 인간들의 욕망과 암투를 집어넣었는데 어설프게도 그 인간들의 역사에는 정작 '인간'은 없고 '특권적인 개인들'만 난무한다는 국내의 모 평론가의 비판도 수긍하기 힘든데요. 그는 이 작품이 <일리아드>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는 것 같습니다. 원작에서 '신'을 '인간'으로 대체했다고 해서 모든 캐릭터들의 행동이 '인간'의 마인드와 사회성으로 설명되어야 할까요? <일리아드>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입니다. 판타지에서 신을 떼어놓았다고 해서 주요 등장인물들에게서 없었던 질투와 반항심이 생겨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마 그 평론가는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우스의 영웅담만 쏙 빼와 강조한 영화가 [트로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영웅'이 강조되니 거부감이 생기는 모양이죠? 그러나 제가 보기에 [트로이]는 영웅담이 아닙니다. 아킬레우스가 죽으면서 영화가 끝나니 일반적인 영웅담의 모습을 취합니다. 그러나 감독 인터뷰에서도 나오듯이 "살인 괴물에 가깝던 아킬레스가 인간적으로 변화하는..."이라는 감독의 말이 계속 남습니다.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환호를 받으며 귀향하는 영웅이 아니라 불타는 트로이의 건물들 사이로 여인 브리세이스를 찾다가 죽어간 아킬레우스는 악인들에게서 선인을 구하거나 적의 위협에서 나라를 구하는 말 그대로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괴물에서 자비를 베푸는 인간으로 변화합니다. 그의 심복에게 때려서 미안하다는 말도 합니다. 트로이를 침공했을 때도 왕을 잡아 죽이는데 목적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냥 브리세이스만 허망하게 찾아다니다가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브리세이스에게는 자신에게 평화를 주어 고맙다는 말을 남기죠.
원작을 왜곡했다는 비판은 최소한 없어야 합니다. 그건 정말 부끄러운 수준 이하의 논란입니다. <일리아드>는 성역이 아니고 성서도 아닙니다. 호메로스는 신이 아닙니다. 겁이 많은 겁쟁이일 수도 있고, 아예 후대에서 만들어낸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리스신화는 어느 한 시점에 어느 한 작가에 의해서 탄생한 단일 본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변형과 첨부가 부가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조된 부분도 있고 변질된 부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낸 시간의 작품입니다. 원본이 어디 있고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경직된 사고야말로 창조력과 상상력을 저해하는 입시위주의 암기교육이 낳은 병폐입니다.
오히려 [트로이]의 문제점은 종종 끊기는 스펙터클에 있습니다. 수천, 수만 명의 군사들이 전쟁을 벌이다가도 어느새 조용한 벌판으로 바뀌어 있는가 하면, 트로이가 불타오르며 벌이는 밤의 전투는 단지 엑스트라 몇 명이 돌아가면서 싸우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소박해 보였습니다. CG도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더욱 멋지게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트로이 목마의 웅장한 외형은 최소한으로 생략되었고, 트로이의 해안수비대는 아킬레우스의 소수 병력에 너무 빨리 무너져 그 많던 병사들이 다 어디로 도망갔나 싶을 정도로 빈곤해 보였죠.
[스파이더맨2]
2004년작. 샘 레이미 감독. 토비 맥과이어, 커스틴 던스트 출연.
스파이더맨이 속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성장하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샘 레이미의 관심은 '스파이더'의 그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맨'의 존재성입니다. 무능하고 소심한 피터 파커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우러러보게 하는 '스파이더맨'에서 자기 자신의 문제로 들어오는 과정이 영화의 전부를 지배합니다. 이 사랑스런 캐릭터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서 참기 힘들었다는 감독 셈 레이미의 속편 감독의 변을 보면서 그의 3편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침, 정성일 평론가의 글이 올라왔기에 그의 생각에 90% 동의한다는 의미에서 대신 올립니다.
난 인간인가 거미인가
딜레마 ‘거미줄’에 걸리다
무덤 가에서 소년은 자기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소녀가 자기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할 때 그걸 고통스럽게 외면한다. 아니, 차라리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육신과 영혼의 분열 사이에서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여기서 이 질문은 데카르트적 회의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 분류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냐하면 지금 영혼은 인간과 거미의 두 개의 육신 사이에서 자기가 머물 곳을 정하기 위해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은 자기의 존재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험난한 여행길을 걸어서 떠나는 대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갈 것이다. 여기는 테베가 아니라 뉴욕이며, 이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은 소포클레스가 아니라 샘 레이미이다. 소년은 고통스럽게 자문한다. 나는 인간의 자리에 있는 곤충인가, 아니면 곤충이 되어버린 인간인가 <스파이더 맨> 첫 번째 에피소드는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한다.
샘 레이미는 전편에 비해서 특수효과 팀을 다루는 데 훨씬 능수능란 해졌으며, 스파이더 맨을 뒤쫓아 자유자재로 빌딩 사이를 오가는 카메라의 무중력에 가까운 상하좌우 율동은 환호성을 자아낼 만 하다. 특히 스파이더 맨이 닥터 옥터퍼스와 빌딩에 매달려 치고 받는 장면은 그것이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전제하더라도 경탄할만한 지경의 액션을 연출한다. <스파이더 맨>은 <매트릭스>보다 특수효과 액션에서 일보 더 나아갔으며, 샘 레이미는 영리하게도 2억 1천만 달러 짜리 초고가 영화를 마치 B급 액션활극처럼 시침 뚝 떼고 밀어붙이면서 이 영화의 원작이 만화라는 사실을 과시하다시피 한다.
그러나 샘 레이미의 진짜 관심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좀 더 어둡고 고전적인 테마를 끌어들인다. 이 영화의 진정한 싸움은 액션이 아니라 그 모든 등장인물에게 던져진 딜레마에 있다. 그래서 <스파이더 맨 2>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자신의 내면의 분열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들은 모두 상상적인 다른 무엇 되기에 사로 잡혀서 거기서 헤어나올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인간의 꿈을 꾸는 거미인가, 거미의 몸을 빌린 인간인가 혹은 기계의 힘을 빌려 문어의 촉수를 얻은 나는 이상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 이성을 따라야 할 것인가 이 환골탈태의 경계에 서서 벌이는 양자택일의 어려움. ‘스파이더 맨’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에게 던져진 거미와 인간 사이에서의 선택은 사랑에 대한 포기와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이 명령하는 행복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사이에서 그것이 왜 하필이면 자기냐고 반문한다. 닥터 옥터퍼스는 파우스트적 비전이라고 할 만한 힘과 능력에 자기의 나약한 육신을 내맡긴 채 꿈을 이루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 둘은 정신적인 스승과 제자이며,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상적 자아의 자리를 교환하는 거울에 비친 한 쌍이다.
잡종교배와 하이테크 비전, 혹은 육신에 관한 이 우울한 욕망과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결은 사실상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피엔딩의 명령은 너무나 절대적이고,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 맨>의 원작자가 카프카가 아니라 스탠 리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거기서 슬그머니 물러선다. 그러므로 장자의 호접몽을 방불케 하는 존재론적 환영 사이에서 비극적 비전과 스펙터클 액션의 난장판을 펼치는 샘 레이미의 이 기괴하고 균형을 상실한 동화의 현실적 타협은 스파이더 맨이 자기 자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피터 파커가 되어 그가 사랑하는 소녀 메리 제인에게 고백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 놈은 멋있었다 그러나 미처 생각하지 않은 점, 스파이더 맨과 피터 파커의 동일시, 혹은 거미와 인간의 일체감이 이루어지는 순간 피터 파커는 거미줄을 뽑아내는 (인간-거미-)괴물이 되는 것이다. 메리 제인은 그 괴물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 순간 피터 파커는 슬그머니 메리 제인에게 질문을 떠넘긴다. 그 고백의 대상은 스파이더 맨인가, 아니면 피터 파커인가 샘 레이미의 게임은 짓궂게 이어진다. 다음 편은 메리 제인을 함께 좋아하는 피터 파커의 가장 절친한 친구 해리가 스파이더 맨에게 벌이는 아버지의 복수가 될 것이다. 할리우드는 점점 영리해지고, 샘 레이미는 점점 야심에 넘쳐난다. 스파이더 맨은 이제 햄릿과 싸워야 한다. 이런!
정성일 / 영화평론가
사족 1: 제가가 첫 단편영화로 찍기위해 준비중인 작품도 그리스 신화에서의 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족 2: 자꾸만 스파이더맨의 원작 만화가 보고 싶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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