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숲 ***1/2 송일곤의 위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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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15 조회3,2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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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작. 송일곤 감독. 감우성, 서정 출연.
송일곤 감독에게 [거미숲]은 새로운 도전입니다. 그의 첫 실험 작품인 [광대들의 꿈]은 유학시절 친구들에게 바친 애정의 편지이며, [간과 감자]는 광학렌즈를 통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해 온 감독의 열정과 판타지가 결합한 놀라운 걸작이었으며, [플러시]와 [소풍]은 유학에서 돌아와 접하게 된 우리의 문제를 고민과 고통의 눈으로 바라본 작은 실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만들어진 [꽃섬]은 마음의 안식처와 구원의 길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송일곤식 영화의 틀을 기초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영화를 통해 계속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는 이 감독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집니다. 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받은 주인공, 그는 죽는 일과 사는 일의 중간지점에서 판타지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미 사건의 시작도 결말도 무의미해진 상상의 공간에서 어릴 적의 기억을 재구성해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잃어버렸던 기억, 그것은 우연히 접하게 된 거미숲과 소녀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속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아내와 역시 처음부터 없었던 사진관의 민수인(이건 순전히 바노의 생각입니다)은 서로 조우할 수 없는, 소녀의 찢어진 그림을 맞추는 것과는 다른 기억의 조각입니다. 그래서 겨우 아내가 사고로 죽었다는 꿈을 이야기해주는 강민(감우성 역)을 다독여 주며, 그것은 꿈이 아닌 진실이라고 말하는 또 하나의 창작된 아내가, 마치 어두운 동굴을 지나 터널로 들어가는 강민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강민의 기억에서 사진 속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애인 수영(강경헌 역)은, 바로 어릴 때 소녀의 어머니를 죽인 남자의 잔혹한 행동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어린 시절의 강민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그 현장에 직장의 상사와 같이 있었습니다. 창고의 낫은 무기가 되고 피가 튀기는 살인이 벌어지던 그 숲 속의 집에는 이성을 잃은 채 상사와 애인을 차례로 죽이는 강민 외에, 자신의 옛 기억 속 소녀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창작된 자신, 혹은 하늘로 날아간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때의 소년이 또한 있었습니다.
떠오르는 기억들, 그것은 영화의 반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머리를 수십 차례 꿰맨 강민이 머리를 감싸며 다시 거미숲으로 내려가 알아낸 모든 일들은 그 전에 제보를 받고 내려가 벌어진 모든 이상한 일들과 시간적 선, 후의 관계에 있지 않았습니다. 즉, 동굴에서 친구이자 형사인 성현(장현성 역)이 비추는 불빛에 눈을 마주치면서도 문을 그냥 닫은 것, 현상, 인화기에서 꺼낸 사진들이 꿈속에서 찍은 아내의 모습이었던 것 등은 모두 편집되지 않은, 기억들 속에 내재한 페이지번호가 사라진 종이뭉치입니다.
터널에서 강민은 이제 막 살인을 저지르고 나와 지칠 대로 지친 채 서 있는 자신을 봅니다. 다가오는 차에 의도적인지 아닌지 치어 쓰러질 때, 쓰러진 그 강민은 바로 자신을 기억에서 찾아 줄, 동굴에서 터널로 이제 막 들어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또 한 명의 강민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이제 터널 안에는 쓰러져 있는 강민 혼자 있습니다. 마치 연기처럼 민수인과 바로 전 강민은 사라졌습니다.
[거미숲]은 타르코프스키와 페데리코 펠리니, 레오 까락스와 존 세일즈 영화들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영화입니다. 송일곤은 고다르와 펠리니에게서 꿈을 꾸는 자의 완전한 자유스러움을 익히고,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처럼,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처럼, 인물들이 상상하는 논리적으로 차례 되어 있지 않은 연속된 이미지를 그대로 두는 데에서 오는 매력을 아는 감독입니다. 그래서 마이클 파웰이 [피핑 탐]에서 그랬듯이, 스텐리 큐브릭이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그랬듯이, [거미숲]에서 그는 매우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불쾌하면서도 매력적인, 부족하면서도 넘치는 이미지들을 풍부하게 제공하여 작품을 음미하고 즐기는 자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꽃섬]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더 먼 곳으로 확장시켜 놓았습니다. 영화는 다시 '거미숲'이라는 세상 아닌 세상에 대해 깊고 예리하게 칼을 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낫이 등장하고 마치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 듯 하는 빨간 액체가 나옵니다.
왜 하필 거미였을까? 그리고 왜 숲이었을까? 감독이 생각한 거미와 숲에 대한 관찰들이 어떻게 영화를 통해 표현되었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하나의 배경으로만 읽혔을 뿐이죠. 그것은 어쩌면 앞으로 감독 송일곤의 영화에 계속 투영되어질 그 어떤 것일지 모릅니다. '거미숲'이 표현하는 바로 그곳에서 감독의 다음 작품이 이어질 수도 있겠죠.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포장으로 하여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미숲]은 한 번의 감상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합적인 영화입니다. 힌트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고, 실제로 앞뒤가 안 맞는 구조적 결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 스스로 이 영화를 어떻게 여기느냐에 관계없이 [거미숲]은 꿈과 꿈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낯설고 모호해 관객에게 친근하지 못한 운명을 지녔으나 다른 감독들이 접근하지 못한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영화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송일곤 감독은 이미 [거미숲] 한 편으로만 [오픈 유어 아이즈]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메멘토]의 크리스토퍼 놀란과 같은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닐까요? 물론, 감독 송일곤의 영화세계에는 좀 더 공상적이고 관념적인 세상을 다루는 펠레니의 영화들이 넓게 자리하고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사족 1:[텔미썸씽]에서는 어린 시절의 잊지못할 기억에 의해 희생된 현재의 인물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거미숲]도 이해가 옳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역시 출발은 어린 시절에 있다는 가정인데요. [올드보이]나 [텔미썸씽]과는 달리 살인이 계획적으로 나온 사태가 아니라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가 우발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다른 두 영화와 차별되고 있죠.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플래시백이 점차 유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좀 더 다른 방법으로 필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극복하고 넘어서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봤습니다.
사족 2:이 영화의 유일한 약점은 배우들의 연기에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감우성은 훌륭했지만 다른 배우들은 영화와 자신의 연기에 빠져 있지 못해 형식적으로 대사를 읽는 수준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매우 유명한 조연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어쩐 일인지 안정적이지 못하고 시종일관 흔들리고 있었죠. 각 인물들의 대사가 좀 딱딱한 면도 없진 않았지만요.
궁금 1: 강민에게 전화는 누가 한 것일까요? 그리고 사고로 수술을 받아 14일 만에 깨어났다는 바로 그 시점의 강민에게, 전화목소리의 그 주인공은 여전히 유효하고 실존하는 대상의 인물일까요?
궁금 2: 장현성이 연기한 성현은 실제로 수사를 한 것일까요? 아무래도 동굴씬이 마음에 걸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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