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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으로 (Into the Mirror, 2003) - 장화, 홍련보다 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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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58 조회2,8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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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jpg2003년작. 김성호 감독, 유지태, 김명민, 김혜나 출연.

우영민(유지태 역)은 전직 형사입니다. 그의 파트너였던 동료 형사를 자신의 실수로 잃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죠. 그에게는 거울의 공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침 그가 새로 일을 하게 된 백화점에서 거울은 그와 또 다른 의미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자신감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우영민에겐,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 나올 수 없는, 아마도 그건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재개장을 앞둔 백화점에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희생된 이들에게는 1년 전 화재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회사의 자금을 총괄했던 총무부 출신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유일하게 화재 사건으로 죽은 이정현(김혜나 역)이라는 인물이 있었죠.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정현과 그녀의 동생 이지현은 거울과 관련된 특별한 기억들을 드러냅니다. 우영민이 괴로워하던 그 거울입니다.

하현수(김명민) 형사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살해된 자들의 사연이 밝혀집니다. 하현수는 진급을 위해 양심보다는 신속한 종결을 걱정하는 수사관이었습니다. 그의 부사수에게 귀찮은 일들을 떠 맡기고, 우영민에게는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는 그의 태도 등에서 비교적 확실한 캐릭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종일관 우영민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관객을 위해 속시원하게 처리하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최이사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두 번의 살인 사건이 생각보다 단순한 동기에서 연유된 것으로 드러날 무렵, 우영민은 거울 속의 또다른 자아를 가지고 그에게 접근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영민의 사연을 알고 있는 최이사는 똑같은 상황으로 그를 몰고가죠. 하지만 최이사의 복장 어깨에 붙은 마크는 우영민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었지요.

우영민에게 거울은 자신을 "병신새끼"라고 뇌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자기를 두 개로 분리하고 각각을 감지하는 창문이나 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혐오가 부른 망상인 셈이죠. 어쩌면 최이사나, 다른 희생자들을 죽인 것은 거울 속 이정현의 혼이 아니라 우영민의 거울 속 자아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거울 앞에 선 인물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죽어갑니다. 결코, 자책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죠. 최이사도 영화 내내 아무런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괴로움에 시달린 건 우영민 혼자 뿐입니다.

피자 커터로 자신의 목을 베고 죽은 여직원이나, 볼펜에 찔려 엘리베이터 안에서 죽은 김부장이라는 사람이 죽는 장면은 이들 각자의 상상일지도 모르나 자책감이 없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죽이는 자가 상상하는 시선일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손으로 자기를 죽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게 하는 시선으로 그의 죽음을 바라본 것이겠죠. 거울은 하나의 정신적 분리를 의미하니까요. 전혀 다른 세계가 되는 거죠. 죽이는 자는 분명 이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거울 속의 사람이 현실 세계의 사람을 죽인 것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해석되는 영화라면 [거울 속으로]는 평범한 공포영화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영민의 고등학교 후배인 이동하(정신과 의사)가 등장하고, 그의 내레이션이 영화 마지막까지 흐르게 되면서 거울 속 세계와 바깥 세계의 분리된 두 자아에 관한 공포심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뒤집힌 싸인 등 반복되는 거울의 대칭성, 자기 혐오가 부른 자아의 분열이라는 이야기는, 살인을 사람이 아니라 죽은 이정현의 혼령이 했다고 주장하고 믿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해석을 창문 너머의 이야기인 것처럼 설명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김성호 감독의 트릭과 유지태, 김명민의 연기는 [거울 속으로]의 작품성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거울'에 대한 컨셉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촬영 이전의 준비가 철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DVD의 코멘터리에서도 계속 강조되는 부분) 그러나 한계도 분명히 있는 작품입니다. 이정현을 살해하고 사체를 거울 속에 유기한 최이사는 모든 것이 잘 진행될 것이라는 안심이 지나쳤습니다. '거울 속'이라는 결코 안전하지 않은 장소에, 그것도 개장하는 백화점의 메인 홀에 배치된 거울에 시체를 방치하고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안이한 캐릭터 설정입니다.

화재사건 이후로 백화점의 재개장이 이루어지기 전에 갑자기 일어나는 살인도 마찬가지로 그동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 시기에 대한 지나친 생략이 들어가 있습니다. 재개장을 하면 최이사가 급격한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그것을 막기 위한 복수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죠. 최이사의 처지에서 바라보면 이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내막을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우영민이 매일 밤 꾸는 악몽도 없죠. 갑자기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아마도 제일 먼저 두려워했어야 할 사람은 최이사였을 텐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리고 영화가 비교적 완성도에 치우치다 보니 김성호 감독의 특징 있는 화면이 부족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만의 색감이라든지, 카메라 위치, 움직임, 이야기 전개방식 등에서 화면 뒤에 서있을 감독의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자신을 매우 억제하고 미리 준비된 장면의 연출에 주력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거울 속으로]는 몇 가지 부족한 부분에도 최근 만들어진 중요한 한국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각본을 쓴 김성호 감독도 마찬가지지만 유지태나, 김명민의 뛰어난 감정 억제 연기도 돋보였지요. 다의적으로 해석할만한 '거울'에 관한 이미지에도 성공한 모습입니다.

사족 1: 실제로는 이지현이 살인을 저지르고, 최이사가 본 이정현은 마지막에 갑자기 찾아온 죄책감과 상실감에 의한 환상이었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혹은 내내 죄책감에 빠져 있던 최이사가 정색을 하고 연이은 살인을 저지른 후, 그것을 실제 인물이 아니라 죽은 이정현의 원혼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다가 마지막 실제로 그런 환상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다가 죽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거울 속 이정현이 실제로 바깥으로 나와 그들을 죽인 것이거나, 이정현의 사연을 우연히 알게 된 우영민의 또 다른 자아가 살인을 저질렀을 수도 있구요. 확실한 건 우영민이 마지막에 서있던 그 거울로 미루어 그는 죽었다는 것이고, 실제의 현실은 이정현과 이지현의 바람대로 풀렸다는 것입니다.
사족 2: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우영민을 찾아왔던 사람은 이지현이 아니라 이정현이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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