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과 시리즈 전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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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59 조회2,7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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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2,2003년작. 피터 잭슨 감독, 일라이자 우드, 이안 맥켈런, 비고 모텐슨, 숀 애스틴, 리브 타일러, 휴고 위빙, 빌리 보이드, 앤디 서키스, 도미니크 모나핸, 올란도 블룸, 존 라이스 데이비스, 이안 홀름 등 출연
'악'으로 분류되는 그룹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머리가 무척 나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숫자나 물량으로 밀어 부치려만 합니다. '선'의 세력처럼 다양한 전법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내지 못합니다. '외모나 체형이 흉측하다' 따위는 두 번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매우 적확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선'은 얼굴부터가 곱상하고 멋지게 생겼지만 '악'은 대부분 덩치가 크고, 도무지 정상적인 형태의 얼굴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또한, '악'은 치명적인 약점을 한 개 이상씩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한 부분이 공격을 받으면 '악'의 요새 전체가 파괴 된다든지(스타워즈의 데드스타), 햇볕에 약해 밤에만 돌아다녀야 한다든지(캐리비안의 해적에서의 저주받은 해적들, 각종 영화의 뱀파이어들), 특정한 소리나, 약품에 죽는다든지(화성침공의 외계인들, TV시리즈 V의 외계인들) 하는 것들인데, 그런 점들이 눈에 띌 때마다 "그들이 그렇게 무서워 할만한 악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머리도 나쁘고, 못생겼고, 약점도 많고... 정말 불쌍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선'으로 각본과, 감독과, 관객에 의해서 규정된 세력들의 특징은 이와 반대의 특징들이 있겠지요. 너무나 뻔한 일이므로 다른 설명을 더 보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린 어느 소설에서건, 어느 영화에서건 '선'이 '악'을 어떻게 무찌르냐를 놓고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게 됩니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이 승승장구라도 하게되면 태연하게 극 후반부의 '선'으로의 역전을 기대하는 관객의 수가 늘어나게 됩니다. 너무나 일반적인 현상이라서 그다지 의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구성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혼란은 찾아 옵니다. 만약, 어린시절 선과 악이 명확한 구분 속에 전쟁을 벌였던 환타지 영화들을 보고 자랐던 사람이라면, 커가면서 적잖은 혼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점차 잘못되어가는 자신도 발견하게 되겠지요.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이 '선'처럼 보였다가도 금새 '악'처럼 보이기도 하고, 좋은 것 같으면서도 나쁜 것 같기도 하고, 내 편인 듯 보이다가도 어느덧 적인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악'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요. 게다가 '반지'로 상징되는 권력에의 욕망이 이미 다른 형태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사실도 아닙니다.
혼란스러운 현실에서의 도피를 꿈꾸는 사람들이 매일밤 자신만의 상상의 공간에서 중간계를 설정하고, 난장이 족을 창조하며, 선한 요정들과, 흉칙한 괴물들과, 나무 정령들과, 죽은자들과, 마법사들을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현실에서 꿈꾸지 못한 명확하고 통쾌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난장이 족들이 서로 사랑을 하고, 거대한 나무들이 걸어다니며, 집보다 큰 독수리들이 날아다니는 장면들은 모두 흥분할만한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판타지가 현실과의 대립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현실 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전쟁과 권력다툼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꿈은 사라지고 판타지는 변질 됩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대규모 전쟁 장면의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인 효과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전부가 되지는 못합니다. 나팔을 불며 일렬로 늘어서 진군하는 로한의 군대 모습과, 성벽을 깨기 위해 각종 기구들을 열심히 움직이는 오크 군대의 치열한 싸움을 보면서 극장안을 쩡쩡 울리는 음향과, 빠르게 스크린을 훑고 지나가는 각종 그래픽을 생각하는 것 이상의 그 어떤 것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이 정말 악하고, 무섭고, 강한 존재라면 '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의 막강한 힘을 과시했어야 합니다. 반대로, 그렇게 강하지 않은 존재라면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모든 세력이 뭉쳐 그들과 대항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러나 판타지가 일단 전쟁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현실에서의 역사적인 경험과 방법의 반영 외에 길이 없기 마련입니다. 싸움은 불리하지만 이겨야하고, 수적으로 밀리지만 아군의 희생없이 그것도 통쾌하게 이겨야만 합니다. 그때부터 그 판타지는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치열한 현실과의 작은 끈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함몰됩니다.
그래서 판타지에서 별로 도피하고 싶지도 않은 자들이 마구 양산해내는 그들의 판타지에는 꼭 전쟁이 들어가 있습니다. '국가', '왕', '종족', '동맹', '후계자' 등이 들어가 있습니다. 기원전 메소포타미아와 소아시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각종 세력들의 이전투구를 보는 것 같고,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거쳐 기원후 여러 유럽 나라들에서 일어났던 권력 쟁탈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전쟁을 벌이게 되는 계기가 그렇고, 전쟁의 행태가 그렇고, 전장을 향해 나가는 군사들의 복장이 그렇습니다. 판타지가 아니라 있었으면 좋았을 법한 또 하나의 세계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악'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줘야만 하는 판타지, 보기만해도 좋은 편일 것 같이 생긴 착한 '선'이 전쟁을 통해 흉측하게 생긴 악당들을 멋지게 물리치고 나라와 종족을 구한다는 판타지는 그래서 괴로운 현실로의 귀환을 더 두렵게 만듭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날 때 사라져버린 환상에 대한 아쉬움과, 억울함과, 안타까움과 유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기나긴 원정을 마친 호빗 족은 평화로운 마을 샤이어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생명에 위협을 느낀 매우 험난했던 모험을 경험한 이후 남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오지만 마을의 한 아주머니는 떫은 표정으로 그들을 쏘아봅니다. 술을 마시며 즐거운 분위기를 즐기는 자리에서도 그들을 특별대우 해주는 아무런 시선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격려하고 의지하는 느낌의 눈길을 주고 받습니다. 샘(션 어스틴)은 순간 용기를 내어 마음에 두고 있던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마치 지나가는 장면처럼 처리 되었지만 샤이어에서의 이런 일련의 모습들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막대한 피를 봐야하는 그 광적인 전쟁의 뒤 편에는 별로 기억하지도 않는, 기억할 일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축제와, 사랑과, 가정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매일 밭에서 일군 곡식을 저장하고, 한가로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중요한 일상은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돌아온 4명의 여행자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도 일행도 굳이 자신들의 모험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것이죠.
간달프와 프로도가 배를 타고 떠난이후 샘에겐 한권의 책이 쥐어져 있습니다. 프로도가 쓰고 간 '반지의 제왕'이죠. 나머지는 샘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그는 그를 마중나온 아이들을 안고 아내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집의 문이 닫히고 비로소 이 기나긴 여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크레딧이 시작되죠. 왕의 귀환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피터 잭슨은 3부작을 마무리 하는 제 3편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큰 스케일로 전쟁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보다 죽음의 산으로 올라가는 프로도와, 샘과, 그리고 배신의 동반자 골름의 여정을 촬영하는 감독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은 것도 3편까지의 감상 이후였습니다. 비록, 전쟁에 많은 부분의 정열을 소비한 영화이지만(그래서 추악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확장하기에 불충분 했지만) 마무리를 아름답게 그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족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즈의 마법사], [몬스터 주식회사] 같은 영화의 공통점은 이것입니다. 신비한 세계를 그리면서도 전혀 그 신비한 세계를 그리기 위한 기술적 효과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들 영화가 만약 좀더 화끈한 그래픽과 음향효과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흥행면에서 더욱 큰 사고를 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감독들은 그것에 중대한 목표를 둘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위대한 영화 스승 중 한명이었던 페데리코 펠리니는 기술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영화 음성 더빙을 할때도 목소리와 배우의 입이 맞지 않아 재작업을 하자는 스탭의 주장이 있었는데 별 개의치 않았다고 전해지죠. 원래 '꿈'이라는 게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요.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지의 제왕]을 감상하면서 위의 영화들처럼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 지나치게 현혹 당해서 일까요?
사족2: 9시간이 넘는 장대한 판타지 [반지의 제왕]에 대한 호의적인 감상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좀더 모호하고 이상한 세계를 그리는 일본의 판타지 아니메들이 더 좋고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정서적으로도 감동할 수 있구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아르곤이 새로운 왕의 자리에 올라 아르웬과 키스하는 장면이 그렇게 정의롭고, 공정하다는 느낌도 안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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