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츄럴 시티 (Natural C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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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6:01 조회2,4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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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작. 민병천 감독. 유지태, 서린, 이재은 출연
사이보그 리아(서린 역)는 춤추는 무희로봇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춤만 추면 됩니다. 그런데 폭주사이보그를 제거하는 임무를 가진 MP요원 R(유지태 역)이 그녀를 사랑했나 봅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인간의 영혼을 더빙하는 금지된 방법을 이용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R은 사이보그와 인간 간에 처절한 전투의 한 복판에 들어가게 됩니다. 영화의 전제는 이것입니다.
감독은 어느날 사랑하던 애완견이 죽자 따라 죽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었다고 합니다. 그 남자에게 애완견은 자신의 모든 것이었을 겁니다. 삭막하고, 외롭고, 힘든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폴 마쥴스키의 1974년 걸작 [해리와 톤토]에서 미국을 횡단하며 자식들을 찾아 나선 70대 노인 해리의 유일한 동반자는 톤토라는 고양이였습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미 서부의 조용한 해변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 노인은 여행 도중 죽은 톤토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외로움이란 인간의 모든 감정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것입니다.
[내츄럴 시티]에서 R이 불길하고 미래가 없어보이는 사회에서 유일한 대화의 통로로 리아를 선택한 것은 감독의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리아는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녀는 있으라면 있고, 없어지라면 없어지는, 한마디로 R을 귀찮게 하지 않는 상대하기 편한 존재일 뿐입니다. 리아는 시온(리아 역)처럼 말끝마다 대꾸를 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R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상대입니다.
그런데 R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수명까지 연장하기 위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스스로 R을 사랑한다고 느끼지 못하는 그녀에 대한 R의 사랑은 말하자면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현실도피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해리와 톤토]에서 해리는 지독하게 외로운 여정에서 톤토를 잃지만, 그래서 아들들의 외면보다 더욱 큰 아픔을 겪지만, 싸늘하게 식은 톤토의 사체 앞에서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로 답합니다. 그러나 R은 반대입니다. 그는 어렵게 잡아놓은 시온을 쉽게 보내버린 리아를 쳐다보며 "병신"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도 쉬운 상대를 통해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건 뜻밖에도 '여자'였습니다. 그리고는 닥터 지로(너무나 노골적인 캐릭터)를 파멸시키고 잡혀 있던 시온을 구해내는 인간애를 발휘하기 전까지 원래의 MP요원으로 귀환하기 위한 준비운동을 한참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라 준비운동입니다. 본색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는 이미 자신의 동기 노마와의 동일한 계단 위의 우정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이 정작 사랑한다는 하위의 계단 위의 리아를 버리고 잠시 후 소멸하게 될 뉴컴사로 들어갑니다.
관객은 자신의 위치로 돌아온 R을 다행으로 여기겠지요. "말로만 듣던 MP최고의 요원의 솜씨, 드디어 실력을 드러내는구나"라며 반겼겠지요. 그러나 리아는 우습게 됐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리아는 스스로 인공지능을 떼어냅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 수동적인 행태. 아마도 리아는 R이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주길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이 한심한 로봇의 이미지는 2080년이 되어도 사회는 여전히 마초 같은 지배가 계속된다는 2003년의 한 한심한 상상력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이버펑크?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자신을 진화하려는 사이보그의 등장? 황폐해보이는 주홍색 하늘? 다 접어두죠. 비행용 안경을 머리에 걸쳐 쓴 채 모자를 눌러쓰고 항상 주인공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들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끼워넣기 되고,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에 거리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 않은 과거의 일본식 우산이 대놓고 등장하며, 여지없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점'이 나오고, 너무나 흔한 몸 파는 여자라는 캐릭터가 매우 비중 있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등은 사람을 거의 실신시킬 정도로 막강한 상투성을 보여줍니다.
너무나 말이 많고,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노력하는 각 배역들의 캐릭터(특히, 밀매업자, 포장마차 주인, MP자료검색요원, 무도회장 사장 등)는 영화를 깎아내리고 있으며, 창조적이지 못한 비쥬얼은 나쁜(부족한 게 아니라 분명히 나쁜) 스토리와 더불어 강력하게 영화의 질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소박한 게 낫습니다. 어린 동물의 죽음을 슬퍼하여 뒤따라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외롭고 슬픈 시대를 그대로 살려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2080년으로 옮겨, 별로 외로워 보이지도 않고 번듯하게 생긴 성공한 엘리트가 엉뚱하게 사이보그를 자신의 소유물로 삼고자 하는 것으로 확장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그건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리아를 두 번 죽이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사족: 시온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성격이 바뀌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직 저 안에 있어" 정확하진 않지만 노마가 뉴컴사에 혼자 남으면서 한 대사입니다. 그리고는 공격형으로 변신한 사이보그들이 달려드는 데(마치 [28일 후]의 터널 속 좀비들을 보는 것 같은) 별로 신통한 대책이 없습니다. 탄알도 모자르네요. 노마는 너무나 비장했지만 저는 진부함에 눈물 흘리며 혀를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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