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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50 조회2,5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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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661m3.jpg2001년작. 이안 소프틀리 감독, 케빈 스페이시, 제프 브리짓 출연.

정말 재미있습니다. 케이-팩스에서 왔다는 외계인 프롯과 일상에 지쳐서 사는 평범한 정신과 의사 마크 파웰, 그들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나누는 대화는 현대 미국 영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롯을 의사에게 대려다 준 직원은 이렇게 말하죠. "거칠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판에 박히지 않은 자유토론을 유도합니다. 프롯은 태연히 과일을 먹죠. 배우들의 연기와, 상황설정, 가구들의 배치, 카메라 구도 등 모든 것이 꽉 짜여진 듯한 느낌입니다.

영화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정신병원씬, 어느누구도 우리나라 영화에서처럼 미쳐 날뛰거나, 소리를 꽥꽥 지르며 정신병 환자임을 스스로 자처하는 환자는 없었습니다. 간호사들도 그런 저능아 환자를 상대하지 않아서 참 좋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울해도 무표정한 얼굴로 낙서를 하는 것(베티)이 고작이었죠. 그들의 일상은 일반인과 다를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곳에 프롯이 오게됩니다. 프롯이 무슨 마술을 걸어서 이들을 병으로부터 해방시켜 줄까요? 도리도리~ 인간 육체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프롯은 외계인 답게 특별한 재주(자외선 구분, 케이-팩스에 대한 묘사, 개와의 대화 등)를 선보이지만, 병에 걸린 지구인들을 치료해주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빌린 육체의 기억을 의사로 하여금 떠오르게 만듭니다. 이건 프롯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와 자신의 가족을 위한 장치였던 셈이지요. 프롯이 누군지를 밝혀가는 과정에서 끝내 그가 외계인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의사가 찾아냈다는 그것들은 결국 자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 효과를 주었습니다.

프롯은 육체의 기억을 모조리 뽑아내며 가족을 구성하는 지구인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것이지요. 마크 파웰은 정신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해야하는 의사입니다. 그의 의사로써의 자부심은 대단해서 영화 초반부에 프롯이 환자들에게 조언을 하고, 환자들이 그에게 의존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치료하는 건 나지 자네가 아냐"라고 말하는 한마디에 요약되어 있죠. 그런데 영화가 끝나면 변해있는 건 누구였을까요?

치료는 진정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여태껏 살아왔던 과정의 반복이 아닌, 과거와의 단절을 통한 변화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듭니다. 우리는 어차피 모든일을 잊고 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과거의 기억은 계속 현재의 우리를 속박하지요. 그래서 변화란 어려운 거죠. 치료 받아야할 환자, 치료하는 사람, 우린 모두 이렇게 자신이 처해 있는 처지를 각각 대변하려고 애쓰며 평생을 사는 것은 아닌지요. 그것이야말로 병이 아닐까요?

변화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매우 안타깝게 쳐다보는 외계인 프롯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를 보며 '가족'이라든지, '이상향'이라든지 하는 것들의 연상은 매우 표피적인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영화 속 주인공처럼 기억상실증에 걸린 프롯을 치료해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화목한 가정을 보여주려는 야단법석이 그런 경우죠.

프롯에 의하면 케이-팩스는 집단이 아닌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결혼도 안하고, 가족도 없죠. 우리의 눈으로 매우 어리석고, 외롭고, 불합리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요. 파웰 박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먼 외계에서 온 그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보는 눈을 바꾸고 있습니다. 바로 일상의 중요함입니다. 고도로 발전된 과학으로,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항성의 운동궤도를 자유자재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 1000광년 떨어진 행성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세계라 하더라도 프롯이 정신병원내에서 환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파랑새를 언급하며, 의사의 집에서 그네를 밀어주는 것 등으로 자신의 지구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매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세삼스레 느끼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사족: 최면이 아닌 상태에서 프롯이 발작을 일으키는 씬이 하나 있는데 설명하기 복잡하네요. 빌린 육체의 기억때문에 최면이 아닌 정상상태에서 스프링쿨러의 물을 보고 갑자기 발작을 하며 실제적인 고통을 받는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죠. 그 건 눈물흘리고, 정신 못차리던 최면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제 시작하죠"라고 말했던 전 장면들과 배치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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