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 범작 이상이 되긴 힘들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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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51 조회2,3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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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작. 김지운 감독, 염정아, 문근영, 임수정, 김갑수 출연.
기이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벽지와 바닥의 카펫, 어두컴컴한 실내, 알쏭달쏭한 아버지 캐릭터, 구체적인 과거로 돌아가는 회상 등 이 모든 것들이 [장화, 홍련]의 평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전제는 새엄마를 인정하지 않는 두 아이와 그로 인해 생긴 큰 아이의 정신병적 증세로 인한 환상입니다. 애매모호한, 정체불명의 캐릭터인 무현(김갑수 역)이 병을 앓고 있는 수미를 데리고 시골의 외딴 가옥으로 오면서 영화는 시작하죠.
다시 말하면, 수미는 이미 약한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죠. 요양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든, 요양을 위해 내려온 것이든 관계없이 이미 시작할 때부터 수미는 증세가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작품의 결정적 힌트를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을 위한 글이 됩니다. 아래부터는 아니죠.
우리의 생활로 돌아와 보죠.
당신의 주변에 누군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가정해보아요. 이제 막 요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실 건가요. 아마 집안 분위기부터 환하게 바꿀 겁니다. 지저분하거나, 어두운 것은 치워버리고, 밝고 따뜻하게 꾸미겠죠. 이건 상식입니다. 특히 공격적인 성향의 병이 있었다면 집안의 분위기는 매우 조심해야할 사항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장화, 홍련]을 보세요. 어이없는 캐릭터인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온 뒤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고작해야 면도하다가 밖에서 수미 혼자 그릇을 깨고 발작하는 소리에 서글픈 표정을 짓거나, 아이 때문에 잠시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의 상태를 설명해주는 뒷모습만 가끔 보여주거나, 폼 잡고 앉아 수미가 차려준 밥을 먹거나, 화내는 수미에게 그러지 말라며 소리지르는 게 고작이죠. 가끔 알약도 주지만요.
그가 정말 아버지가 맞나요? 영화 [비밀]에서 딸의 육체와, 아내의 영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버지는 남편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요. [제리 맥과이어]에서 엄마에게 접근하려는 이상한 남자에 반감을 가진 아이를 대하는 탐크루즈의 유머와 재치 속에는 젤위거를 사랑하는 마음과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습니다. [장화, 홍련]의 아버지는 그런 게 없습니다. 모든 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 애써 억누르고 있지요.
병에 걸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장화, 홍련]의 아버지는 왜 정상인 사람도 금방 미쳐버릴 것 같은 이상한 문양으로 가득 찬 집안으로 아이를 밀어 넣었을까요? 두 명이 살기엔 너무 큰 실내에 불은 모두 꺼져있고, 그들은 하루종일 TV도, 음악도 즐기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테이블의 식사 장면에서는 외국의 유명한 공포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비한국적인 정서로 채워져 있죠. 그리고 배경으로는 언제나 클래식한 경음악이 흐르지요.
새엄마 때문에 자살한 친 엄마, 그리고 또한 그 때문에 죽게 된 동생, 어린 수미가 정상적인 성장을 할 수 없는 배경에는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역할을 다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포와 연결이 될 때는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죠. 싱크대 밑에서 나온 손을 보고 단순히 "이 집은 수상해"라고 말하는 그 천연덕스러운 배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건 집이 이상한게 아니라 당장 플래쉬를 비추어 싱크대 아래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새엄마의 남동생 부부를 집에 초대해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도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혼자 엄마 역할을 하는 수미를 뭐 씹은 표정으로 안타까워 쳐다보는 그런 뻔한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수미의 정신분열이 극에 달했음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케이-팩스]에서 의사가 외계인이라 자처하는 환자를 그런 식으로 쳐다보며, 자신의 아래로 깔아놓고 대화를 나눴다면 영화는 망가졌을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거의 관객을 위한 서비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가죠. 벽장 안에서 목을 매단 채 죽은 친엄마, 그리고 무너진 벽장에 갇혀 죽은 동생, 이것을 방관했던 새엄마, 우리는 속시원히 사건의 전모를 알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데 참 시원하기도 하겠습니다. 영화 내내 영화의 단서를 미리 드러낼 만한 장면들을 모두 도려내는 데 열중했다는 감독의 변을 듣고나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단서인지를 놓고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하게 됩니다. 고작, 후반부의 깜짝쇼를 보호하기 위한 단서요?
대한민국의 관객들은 그렇게 머리가 나쁘단 말입니까? 정신분열에 걸린 한 아이의 다중적 역할을 그리도 이해 못할 거라 생각했단 말입니까? 그건 그것대로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연결시켰어야 합니다. 그게 주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주가 되면 단순한 공포물이 되는 것이고, 주가 아니라 마치 물 흘러가듯 처리했으면 치밀한 철학적, 심리적 영화가 될 것이었습니다.
[파이트 클럽]에서의 자신의 분신과 함께 겪은 폭력적 과정을 보십시오. 결국, 다르게 존재하는 내 세계의 또 하나의 나를 보여준 영화이지만, 마지막의 반전이 영화의 전체 주제를 가로 짓는 성격의 것은 아니었죠. 반전은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25시]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울 속의 또 다른 내가 영화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크게 영향받았을 법한 [식스센스]의 반전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느냐고 묻고 싶은 겁니다. [장화, 홍련]이 관객에게 공포를 주고자하는 단순한 여름용 영화였다면 불필요한 질문이겠지요.
후반부에 아버지가 "수연이는 죽었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아마 해방감을 느끼신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혼자 "아~ 그랬군, 흥미로운 걸"하고 속삭였죠. 그런데 갈수록 그게 영화의 모든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매우 허탈했습니다. 감독은 어두컴컴한 저택에 기괴한 벽지와 카펫을 마구 깔아놓고 관객보고 "여긴 유령의 집"이라고 선언해놓고는 그 안으로 배우들을 밀어넣고, 극장에 오신 손님들께 공포체험을 즐기라고 말해버린 셈이 됩니다.
사족 1: 어차피 공포 영화라면 얼마나 공포를 줬느냐가 문제인데, 싱크대 밑의 유령은 유령이라기 보다 좀 불쌍해 보였고, 수미의 꿈속에 등장한 귀신은 어차피 악몽이었으므로 별다른 무서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수미가 새엄마와 수연이의 역할까지 혼자 했다는 사실이 은근히 공포심을 주지만, 그런 수미를 방치한 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반감됐지요. 각본과, 연출력에 문제가 많았다고 봅니다. 다만, 영화제작의 기술적 세련됨은 느낄 수 있었는데, 화면의 색감이라든지, 카메라의 위치라든지, 혼란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연기해낸 염정아와 임수정 등 배우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문근영도 귀여웠구요. 그것들이 영화를 평균점으로 회귀시켜 놓았죠.
사족 2: 감독의 관심이 온통 '관습적이지 않은 공포'에만 있다는 것을 DVD코멘터리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언론과 네티즌 사이에선 [장화, 홍련]에 대한 갖가지 억측과, 해석이 난무하며 새로운 영화를 창조하다시피 하는 사태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그들은 모를 겁니다. 좀 그럴듯한 영화를 가지고 그런 논의를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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