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 (Wishing Stairs,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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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51 조회3,5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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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작. 윤재연 감독, 송지효, 박한별, 조 안, 박지연 출연.
[여고괴담] 그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을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겁을 잔뜩 집어먹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DVD를 넣으니 방안이 온통 혼귀들로 가득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창문이 흔들리고 갑자기 침대 아래에서 손이라도 튀어올 것 같은 귀신 상상 때문에 영화 보기도 전에 나가 떨어질 지경이었죠.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소희와 진성은 처음 10여분 간, 서로 매우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다 갑자기 수도여고의 촬영 장소, 혜주의 지하 작업실로 이어집니다. 이곳은 혜주와, 한윤지 사이에 주요 사건이 일어나고, 마지막에 소희의 귀신이 들린 혜주가 진성이와 중요한 기억을 되살리며 대화하는 장면을 위한 공간이었죠.
소희와 진성이는 발레콩쿨로 한명이 선발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우정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 혜주가 만든 여우계단 모형 작품이 진성이에게 보여집니다. 사건의 시작이죠. 감독은 공포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위해 전반부의 이야기들을 많이 편집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콩쿨이 진성과 소희의 우정을 그렇게 쉽게 단절 시킬만한 것이었느냐 하는 점에 대한 설득력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건 소희가 자살을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성이의 꿈에 나타난 소희는 결코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진성이의 일방적 상상이겠지만요. 다리를 다친 이후의 소희는 아마 진성이의 좌절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일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살을 했습니다. 애초에 소희와 한윤지는 밝은 성격으로, 진성이와 혜주는 약간 내향적 성격으로 설정한 것과 배치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어쨌든 사태는 벌어졌습니다. 진성이는 자신의 욕망으로 가장 친한 친구 소희를 잃었습니다. 동시에 혜주 또한 의지할 데를 잃어버렸지요. 이 때부터 비극은 시작됩니다. 혜주의 여우계단 소원, "내게 소희를 돌려 줘"는 이 기막힌 스토리의 절정을 이룹니다. 혜주의 캐릭터는 바로 이 순간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욕망과 자책감, 혜주의 소외감이 소희의 혼령을 불러 오게 됩니다. 원한을 산 귀신이 한풀이를 하기 위해 이승에 남아 사람들을 괴롭히는 스토리가 아닌 것이죠.
이로써 [여우계단]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내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진성이와 반 아이들의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혜주인지 소희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인물이 점차 자신의 얼굴을 잃은 채 내면의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진성이의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달라는 절규, 그리고 게단에서 나오는 얼굴과, 손, 마침내 나타난 창백한 얼굴의 소희 귀신,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진성이는 복잡한 심경 속에 빠져들죠. 그리고 진성이의 벽장 속 씬으로 이어집니다. <- 하지만 이부분의 편집은 감독 말대로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습니다. 편집되는 바람에 진정이의 소희에 대한 감정을 읽어내기가 힘들어졌지요. 또한, 소희 귀신이 나타나 한차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다 가버린 결말처럼 되어버렸죠.
영화는 전체적으로 꽤 흥미있게 만들어졌고, 여고생들이 겪을 수 있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복잡하지 않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여고괴담] 이라는 틀이 장애가 되고 있었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일 겁니다. 부분적으로 애러들이 많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신인 여자 감독의 열정과, 애정이 돋보이는 영화로 보았으며, 무엇보다도 '무섭다'라고 느끼는 것은 실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죄책감 속의 그 '무엇'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툭 건드려주는 장점을 가진 영화였습니다.
사족 1: 혜주는 소희 귀신을 별로 무서워 하지 않죠. 이유가 뭘까요? 이것이 이 영화의 장점입니다.
사족 2: 명백하게 소희와 진성이 사이에 오고갔던 대화들을 진성이를 만난 혜주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혜주는 실제로 불을 지르고 죽죠. 소희의 귀신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진성이에게 나타난 상상으로 해석하고 싶어도 그렇게 못하게 되었습니다. 혜주와 진성이는 같은 시간에 각각의 상상을 한 것일까요? 서로 상대방을 등장시키면서?
사족 3: 한윤지의 시체로 만들어진 조각을 보고 선생님이 "한윤지 최고다"라고 쪽지를 남기는 장면은 혜주가 기괴한 놀이를 즐기는 초인간적 살인마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삭제되어야 마땅했습니다.
사족 4: 창문 넘어로 등장하는 소희 귀신 장면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귀신의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감독이었다 해도 그렇게 등장시켰을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표절이 아니라, 진성이의 표절이죠. 이건 또 소희의 귀신이 진성이의 상상이라는 암시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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