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2002) ***1/2 > 예전리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예전리뷰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2002) ***1/2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55 조회2,542회 댓글0건

본문

equi.jpg2002년작. 커트 위머 감독, 크리스찬 베일, 에밀리 왓슨, 테이 딕스, 숀 빈, 윌리엄 피치너 출연.

영화는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난 후의 어느 시점의 미래에서 출발합니다. 국민 모두가 사랑이나 정의감, 분노 등을 억제시키는 발명품인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을 주기적으로 투여받고 사는 독재국가가 배경인 미래 사회지요. 인간의 욕망이 멸망을 불러 왔다는 특이한 발상에서 출발한 설정입니다. 독재자는 약물을 거부하거나 지하세계에 숨어 미술, 음악 작품을 보존하는 등 감성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을 발견해내고 그들과 그 작품들을 제거시킵니다.

여기에는 클레릭이라 불리는 훈련된 특수경찰들이 투입됩니다. 최고의 클레릭 중 한사람인 프레스턴은 신기한 총기술로 연마된 당대 최고의 파이터입니다. 그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독재사회의 충실한 개가 된지 오래되었죠. 영도자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충성심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주던 그는 그러나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내와, 아이들, 사랑스런 동물들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자신을 발견하죠.

영화 속 프레스턴은 켤코 낮선 인물이 아닙니다. 한 조직의 일원이었다가 어떤일이 계기가되어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되돌아 보게되고, 결국 반대의 편에 선다는 캐릭터와 스토리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죠.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이퀼리브리엄]에서의 프레스턴이라는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그는 독재자보다 더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살죠. 영화를 보면 거대한 조직의 힘이 두려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저 옳다고 믿을 뿐입니다. 그는 영도자의 지시에 조금도 의심을 하거나 회의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잃을 때에도, 동료의 변심을 보았을 때에도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 보다는 왜 그랬는지에 대한 혼란만 있을 뿐이었죠. 그가 달라진 것은 약물투여를 거부하다 잡혀온 메리(에밀리 왓슨)를 심문하면서 부터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 거울 뒤에 약물을 숨기는 날이 늘어납니다. 그는 점차 세균 덩어리로만 보이던 강아지가 생명으로 보이고, 너저분한 반군 사람들이 정의로 보이고, 아내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이 뒤늦게 찾아오면서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죠.

극도로 합리주의적인 사회는 애러와 낭비를 줄이고, 효율적인 시민사회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속에서 인간은 죽어갑니다. 철학자 도올은 아무리 애를 쓰고 애를 써봐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지저분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평생 황금빛 변을 누는 것이 최대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박해 보이지만 그것이 진실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후회하며, 마음을 새롭게 하고, 다짐하고, 계획하고, 실수하며, 또한 반복적으로 울고, 웃고, 사랑하고, 저주하고, 실패하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그런 존재입니다.

무균질의 사회를 꿈꾸는 철학이나 사고방식은 폐기되어야 마땅합니다. 인간의 감정에 기계적 지식을 강요하려는 모든 행위는 비판받아야합니다. 프레스턴은 강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위험의 도박안에 밀어넣습니다. 합리적인 판단이라면 어느 곳, 어디에서건 구할 수 있는 강아지를 위해 목숨을 걸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프레스턴의 행동, 그것이 '인간'입니다.

영도자가 죽던 날, 모든 광고매체의 불빛이 꺼지며, 약물공장이 폭파되는 그 순간, '리브리아'의 사람들은 기계적 합리성으로부터 해방되고, 여러가지 애러가 시작될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는 범죄가 늘어날 것이며, 정치제도와 기득권을 놓고 투쟁이 벌어지겠지요. 하지만 바로 그 곳에서 인류의 역사다운 역사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모든 개인이 규격화된 악보에서 벗어나 즉흥의 재즈 연주자가 되는 그런 사회를 지향함으로써, 모든 인간 사회의 충돌이 유해지고, 보편적인 가치로써의 행복을 누리고 사는 그런 인류의 모습이 나타나겠지요.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씨 451도], [시계태엽 오렌지], [THX1138], [가타카], [저지 드레드], [알파빌] 등에서 영향 받았다고 말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실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감독은 열렬한 언론과 사상과 감정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판단해서 잘못된 것은 미리 차단해 남에게 영향 끼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발상을 어떤 힘있는 권력자가 했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그대로 녹아낸 생각들이죠.

이 영화를 보면 커트 위머 라는 이 평범한 감독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혹시나 자신의 실력을 철저히 숨기고 있는 프레스턴과 같은 인물이 아닐까 의심해보기도 했습니다. 허리우드라는 막강한 조직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회의해보지 못한 감독의 필모그래피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신을 진정으로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 지기 전까지 [이퀼리브리엄]은 계속 기억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족: 프레스턴은 수퍼맨입니다. 솔직히 영화 속 그의 실력이라면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못할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새로운 흑인 동료와의 검술 대결에서 철저히 실력을 숨길 만큼 머리도 뛰어난 전략가죠. 바노와영화에서는 이것을 비판합니다. 코엔의 [밀러스 크로싱]에서 가브리엘 번이 연기한 톰은 한 조직에서 쫓겨난 뒤 다른 조직에 가담하고, 자신의 위상을 높여줄 거대한 음모를 꾸밉니다. 하지만 그는 수퍼맨이 아닙니다. 많이 당하죠. 그는 운이 좋아 몸값이 올라가는 이 성공담을 만들어 냈습니다. 총도 잘 못 쏘면서 말이죠. [아리조나 유괴사건]을 보더라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말안해도 아는 것입니다. 그가 괴물같은 살인자를 쉽게 무찌르는 수퍼맨이 아니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죠.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는 완벽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아버지의 설득에 괴로워하죠. 스스로 어둠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 것은 오비완의 가르침에서도, 요다의 훈련과정에서 찾아 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의 대결에서 팔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바닥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환풍구 아래로 몸을 던지죠(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또, 제다이 역사상 최고의 미디어클리언 수치를 기록하고, 제다이 기사단이 그토록 찾았던 포스의 결정체로 인정받던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심지어 제다이 기사단을 멸망시키고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제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열렬히 옹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이퀼리브리엄]를 지지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수퍼히어로의 가공할 만한 액션은 독재자를 제거시킨 또다른 독재자를 연상케하고 있습니다. 그가 영도자를 물리치고 리브리아의 높은 곳에서 세계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영화 초반부에 나온 스탈린과 후세인의 얼굴에서 풍기는 그 어떤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을 정도이니까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directors.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