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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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46 조회2,35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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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작. 이미연 감독, 김태우,김민정 출연.
제작사측에 의하면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고 있으며,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라고 합니다.(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으니까 꺼낸 말입니다) 재섭(김태우)은 과거에 자신의 애를 낳은 적이 있었던 동기생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스스로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직업 때문에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않고 지내는 사람이며, 사창가를 들락거리지요.
이제 17살인 여학생 소희(김민정)는 나이 많은 아저씨를 끼고 다니는 조숙한 아이입니다. 원조교제와 임신,낙태를 거치면서 주변사람들과 대화하기를 거부하는 여학생이구요.
이들이 만난 곳은 재섭이 국어를 가르치는 보습학원이었습니다. 실제 선생님들이 그런 것처럼 리얼하게 보이려는 재섭의 한마디 한마디가 진부해 보일 때 쯤, 소희가 나타나지요. 만남과 헤어짐과 기다림이 반복되고, 그동안 두 남녀는 각자의 세상을 치열하게 숨기려 하지요. 여기까진 참 그럴 듯 했습니다.
그런데 재섭과 소희는 웁니다. 왜 울까요? 그 눈물은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 것입니다. 영화는 여기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칩니다. [고스트 월드]가 아니라 [고스트 피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왕 [고스트 월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두 영화를 비교해 볼까요?
[고스트 월드]에서 사회부적응자 이니드(도라버치)를 보세요. 이니드가 불쌍해 보였나요? 그녀는 당당했습니다. 그녀를 몰라준 것은 세상이지, 그녀가 고스트는 아니었습니다. 또, 시모어를 보시죠. 그가 음반 콜렉터가 된 것은 자신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생각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인가를 생각한 데서 나온 습관인 것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애초에 끌여들이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이니드가 시모어에게 관심을 갖는 과정을 보면, 자신을 방랑자라 여기며 세상을 초월해 아무렇게나 사는 남자들을 혐오하는 데에서 출발했습니다. 뻔한 일상의 형식적인 세상을 거부했고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세상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시모어를 본 것이죠. 그에게서 방랑자와 지하세계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본 것입니다.
[고스트 월드]에서 이니드는 탈선하지도 않았고, 원조교제도 안했으며, 낙태도 안했습니다. 그저 새엄마가 맘에 안들 뿐이며, 독립해 뭔가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은 소녀일 뿐입니다. 그녀는 정상이지요. 세상이 고스트이지요. 시모어도 재섭처럼 사창가를 들락거리거나 매일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정상이지요. 세상이 고스트인 것입니다.
반면, [버스, 정류장]에서 소희는 새로운 세상을 찾는 소녀가 아닙니다. 그녀가 세상과 단절한 것은 아픈 과거와 현재 때문입니다. 재섭도 마찬가지입니다. 탈선해야 마땅할 여러가지 일들을 깔아놓고는 "이렇게해서 이들이 사회부적응자가 되었소."라고 설명하는 순간, 영화는 보는 사람의 맥을 풀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들을 우리사회가 포용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버스의 뒷모습은 강자들이 소외된 개인을 동정하는 시선으로 비쳐집니다. 대학시절 잘난체 하며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 같았던 재섭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변변치 않은 직업을 가지고 나타났을 때, 그의 동기생들이 취하는 태도는 우리사회의 일반사가 강자의 논리를 추종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혼자 집에 왔을 때 술을 마시며 우는 거겠지요. [고스트 월드]에서 시모어의 동업자가 "너는 왜 고작 이런 직업을 가졌냐"고 핀잔주는 장면이 있었나요? 없었지요.
소희의 생활을 보세요. 신비녀 그 자체입니다. 부모는 아마 떳떳하지 못한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는데 자식한테는 관심도 없고, 집에는 항상 부모님은 안보이고 일 돌봐주는 분만 계시는, 그래서 그녀를 외롭고 빗나간 성격으로 그리고자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전혀 와닿지가 않습니다. 소희는 그냥 원래 얌전한 학생인데 좀 놀아보려고 돌아다니는 아이처럼 보일 뿐입니다. [고스트 월드]의 이니드는 신비스럽지도, 얌전하지도, 놀려고 시모어를 만나는 캐릭터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혼자 뭘 할 수 있을지 궁금한 소녀로 그려지는 것이죠.
잔잔하고, 솔직하며, 마음의 상처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것처럼 이 영화가 보이는 것은 그만큼 그런 영화들에 대한 깊이 있는 겸험이 부족해서입니다. 한국 영화관의 스크린에 험악한 말들과, 행동들이 도배질을 해대고 있으니 [버스, 정류장] 같은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여운이 남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내용과 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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