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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 진정으로 추억해야 할 것은 이런게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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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40 조회2,6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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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_murder.jpg2003년작. 봉준호 감독.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박해일 출연.

10년도 넘은 화성에서의 연쇄살인, 그것을 추억하는 것은 형사가 아니라 범인이었습니다. 범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활개치고 다닌다고 감독과 관객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살인을 추억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일입니다. 범인은 그 당시 주요 등장 인물들이 각종 질병과 사고로 죽어 갔던 것처럼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육감을 믿고 좁은 땅덩어리에서는 발로 뛰는 게 최선이라 믿는 박두만 형사(송강호)와 조용구 형사(김뢰하), 그리고 서류만이 진실이라 믿는 서태윤 형사(김상경)와 서울에서 파견된 신동철 반장(송재호)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미쳐갑니다. 흠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내 동네 건달들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쉽게 끝내는 것으로 위안 삼으려는 계획은 무참히 짓밟히고 범인은 보란듯이 비오는 날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살인을 저지릅니다.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 이미 그중 몇 개가 공소시효가 지나버린 이 살인 사건은 영화적으로 매력적입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낼 필요도 없으며 안 잡았다고 또는 못 잡았다고 주요 배역들을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약간 비꼬듯 보여주고 우왕좌왕하는 형사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면 영화는 성공적인 서스펜스 추리물이 됩니다. 관객을 놀래주기 위해 '카이져 소재'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필요도 없습니다.

시체로 발견된 노인과 부녀자, 어린 학생들, 이들은 당시 그곳에서 일어난 희생자들입니다. 그런데 희생자들이 어떤 경위로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영화상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박현규는 왜 고통을 당해야만 했는지, 백광호는 왜 끝내 기차에 치여 죽어야만 했는지 [살인의 추억]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박현규는 "난 절대로 당하지 않아"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하지만, 그가 당시 시대상을 표현한 인물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는 수갑을 찬 채 터널 밖으로 도망치면 되는 인물일 뿐입니다.

학교 뒷산에 살고 있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여인이나, 범행 현장인 산에서 변태 행위를 하다가 범인으로 오해받은 남자나 모두 희생자입니다. 심지어는 조용구 형사마저도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범인이나 마을 사람, 형사들 모두 미쳐 갈 수밖에 없던 그곳은 결코 추억의 대상이 아닙니다. 한가하게 둑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체가 놓여 있던 곳을 들여다 보는 추억에 잠기는 것이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송강호와 김상경, 이들은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형사에 입문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만나 부딪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영화상에서 주요 재료로 사용되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발로 뛰는 수사와 과학수사, 모두 옳습니다. 범인만 잡을 수 있다면요.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이들의 대립은 강조됩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박두만 형사와 서태윤 형사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건 다른 할리우드 영화에서 영향받은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닙니다.

형사들이 감정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발견되는 시체들은 아무렇게 나뒹굽니다. 형사들은 분노합니다. 살인에 대해 분노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뻔히 일어나는 살인의 범인을 잡을 수 없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분개합니다. 이들은 이기적입니다. 백광호의 집에서 조용구 형사는 난동을 부립니다. 범인이라고 믿고 싶어 지하실로 끌고 온 죄없는 사람들을 천정에 거꾸로 매달고 자백을 받아냅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경치 좋은 강가로 불러낸 부인과 대화하면서 자신들도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감임을 강조합니다.

감독은 "시대적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지요. 그 당시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라고 말하려는 듯 보입니다. 형사들의 고충과 괴로움이 전면으로 나서고 희생자들이 뒤로 빠지면서, 아무 이유없이 살아 있는 자들마저 형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비오는 날 죽을 만큼 맞고 수갑도 못 푼 채 도망가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희생양으로 비치면 도대체 영화는 누가 누구를 추억한다는 것인지 헛갈리게 됩니다.

형사들이 저질렀던 과오를 추억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렇게 된다면 제목은 [살인적 심문의 추억]이 되어야 마땅한 게 아닐까요?

철저한 사전조사, 진지한 연출, 배우들의 만점 연기, 화면 구성, 색감, 적절한 긴장감 유발 등,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은 분명히 향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살인의 추억]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영화입니다. 무엇보다도 짜임새 있게 구성된 각본과, 리얼리티를 강조한 송강호, 상경의 연기가 관객들을 흥분 시켰습니다. 다른 한국 영화에서 찾아 보기 힘든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영화로 보입니다.

평가는 시간의 몫입니다. 감독과 출연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과 재회하는지, 우리 사회와 문화가 얼마나 성숙한 역량을 보여주는지는 시간이 결정해 줍니다. 완벽한 영화라거나, 실망스런 영화라는 수식어는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현재 벌어지는 [살인의 추억]에 대한 현상들이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극단으로 치닫거나 노골적인 바람몰이로 이어진다면 거부하겠습니다. [살인의 추억]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감독이 형사들의 고충을 전면으로 배치한 이유가 명확해지기 전까지 이 영화는 미완의 작품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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