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를 쏴라 Tirez Sur Le Pianis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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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26 조회2,5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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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작.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 샤를 아즈나부르, 마리 뒤부아, 니콜 베르제, 미셸 메르시에 출연.
[400번의구타] 이후 트뤼포는 갑자기 미국식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점차 인기를 상실해가던 느와르라는 장르를 선택해 구디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식 갱영화나 패러디는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트뤼포만의 감성으로 풀어내는 것이 힘이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느와르라는 장르에 한번 도전해보았다 라는 점에 만족을 느낄 뿐, 이작품이 트뤼포를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저는 판단합니다. 물론 스스로도 말했지만 미국에서 흥행하고 프랑스의 느와르 영화를 미국에 알린건 성공적 이었지만요.
[피아니스트를 쏴라]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감독 자신은 패러디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총격장면이라든지 달리고 숨는 장면, 차량질주 장면등에서 어쩔 수 없이 험프리 보거트가 떠오르고 미국의 갱들이 생각나는건 그만큼 새로운 형식으로의 발전은 해내지 못한 것이고 자기만의 창안은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다음은 스탠리 코프먼이라는 평론가가 쓴 [피아니스트를 쏴라]에 대한 짧은 평입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쏴라>는 그가 연출한 <쥘과 짐> 이전의 작품이지만, <쥘과 짐>의 미국 내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수업된 작품이다. <피아니스트를 쏴라>는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닌 작품이지만 대체적으로 <쥘과 짐>처럼 호평을 받았다.
"나는 게으르다...... 영화를 촬영할 날이 되었을 때도 완성된 각본을 손에 넣지 못하곤 한다. 또 영화를 찍는 도중에도 내 의도는 수시로 바뀐다. 즐거울 때는 즐거운 장면만 찍고 우울할 때는 우울한 장면만 찍는다"라는 재미있는 말을 트뤼포는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발언은 "완성된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을 빼면 모두 허언에 불과하다.
트뤼포의 작품들은 즉흥적인 분위기를 토양으로 해서 격렬한 유희의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스토리상으로는 이전의 내용과 연결이 안 되는 장면들도 종종 연출된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를 쏴라>는 추격자에 쫓기며 어두운 거리를 뛰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 남자는 가로등에 부딪쳐 쓰러지고 한 행인이 그를 부축한다. 그는 행인과 자신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마의 거리를 동행하고는 악수를 한 뒤 곧 헤어진다. 이어 그를 찾아 그의 형이 술집에 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거리에서의 만남은 그것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
이같은 장면은 단순히 트뤼포가 쫓기는 것에 강렬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나타나는 연출이다. 이러한 자유시적인 접근 방식은 감독이 왕성한 창조력과 정확한 영화적 테크닉을 겸비할 때 그 효과가 더욱 커진다. 트뤼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지닌 감독이다. 그러나 그는 본래 의도나 주제에서 벗어나곤 하는 단점을 보인다.
최근 저녁을 함께 한 동료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1930년대에 그는 런던에서 근무하던 중 심야 영화를 보러 가서 의상 시퀀스로 시작하는 영화를 보았다. 의상 시퀀스에 이어 뮤지컬이 잠깐 등장하고, 다음엔 다소 긴 듯한 갱 영화적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는 졸음을 참지 못했고, 나중에 영화의 내용을 기억해낼 수조차 없었다.
다음날 그는 당시 영국 영화 쿼터제에 따라, 외국 영화가 상영될 경우 하루에 한 번 의무적으로 영국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따라 흥행이 잘 되는 헐리우드 영화를 더 많이 상영하려는 영국의 스튜디오는 편집실에서 필름을 잘라내고, 긴 영화를 90분짜리 작품으로 줄여 내보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극장측은 영화를 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심야에 영화를 상영했다.
이같은 영국 스튜디오의 편집 방식이 바로 트뤼포식 방법이다. 유괴 장면 도중 범인들은 나이 어린 희생자에게 이름이 뭐냐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괴범이 "만일 거짓말을 하면 네 엄마를 죽일 거다"라고 말하는 순간 어린아이의 엄마가 죽는 장면이 삽입 쇼트로 끼여든다. 이런 식의 연출은 재치있고 놀랍기까지 하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졸아서 중간 내용을 빼먹었는지 혹은 연결 장면이 빠졌는지 의아해하게 된다.
<피아니스트를 쏴라>는 필름 누아르에 기초했다. 이 장르는 많은 프랑스 평론가들, 특히 트뤼포가 평론가로 활동했던 <카이에 뒤 시네마>가 찬양해 마지않았던 장르였다. 또한 이 영화는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을 맡았던 작품들과 비슷한 감각의 영화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를 쏴라>는 주제를 벗어나 종종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지만, 이런 시도가 오히려 최고의 묘미를 가져다준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잘 짜여진 필름 누아르나 휴스턴 감독의 <악당을 쳐라>와 같은 가벼운 풍자극도 이런 묘미를 지니지는 못했다.
주제를 벗어나는 방식과는 반대로, <피아니스트를 쏴라>에는 섬세한 시퀸스들이 담겨 있다. 주인공과 매력적인 여성이 처음 잠자리를 하게 되는 열정적인 장면은 2분 동안 시적인 영상으로 아름답게 응축되어 펼쳐진다. 말수가 적고 키가 작은 피아니스트 역을 맡은 샤를 아즈나부르는 10년 전 에시오 핀자가 해냈던, 단신의 섹스 심볼을 연상시키는 연기를 선보였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세 명의 뛰어난 여배우 마리 뒤부아, 니콜 베르제, 미셸 메르시에가 등장한다. 미셸 메르시에는 교양없는 매춘부 역을 맡기에는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1962. 7. 9)
-스탠리 코프먼<세계 영화 평론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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