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키스 (Baisers Volés) ***1/2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5:26 조회2,736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1968년작.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 장 피에르 레오, 끌로드 자드 출연.
[훔친 키스]의 DVD 표지에는 장 피에르 레오가 군대에서 쫒겨난 후 크리스틴과 재회해 그녀의 집 지하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화내내 애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거리의 창녀를 만나는 장면이 두 차례나 나오고 사설 탐정일을 하면서 일을 재대로 하지 못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일에 투입되면서 만나게 되는 의뢰인 부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 장 피에르 레오는 보통 사회 부적응자들이 겪는 외로움의 과정을 코믹하게 연기해내고 있습니다.
트뤼포 감독은 어떻게든 장 피에르 레오와 작업을 계속하길 원했고 [400번의 구타] 이후 3년만에 그를 다시 기용해 찍은 옴니버스 영화 [스무살의 사랑]중 트뤼포의 [앙뜨안과 콜레뜨]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400번의 구타]에서 처럼 여전히 장 피에르 레오는 어린배우 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보였고 이 단편 작품은 다시 6년후 [훔친 키스]로 재탄생 하게된 것이죠.
[훔친 키스]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듯 매우 재미있습니다. 군대 부적응과 여러직업을 전전하는 등의 트뤼포 자신을 [400번의 구타]에 이어 또다시 담아내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트뤼포는 이 영화 촬영당시 문화부 장관 이었던 앙드레 말로에 의해 시네마데끄 사무총장의 자리에서 해고된 앙리 랑글루아를 돕기위한 시위에 참석하면서 영화촬영과 시위참여라는 일을 동시에 하기 바빴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부실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 참 다행스런 것이지요.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1968년은 프랑스학생들의 ‘베트남 전쟁 비판, 대학의 변혁, 현대 자본주의 사회 비판’을 내걸고 학생과 노동자들이 연대된 운동이 격렬했던 때였습니다. 앙드레 말로 사건으로 2월의 작은 혁명이 일어났고 5월혁명이 일어났죠. 그 와중에 칸영화제는 1946년에 처음 시작된 이래 사상 처음으로 열리지 못하게 되었고 그 다음해에는 의도적인지 몰라도 [IF]라는 학생혁명을 다룬 영화에게 황금종려상이 쥐어졌습니다. 베르나르도 베스톨루치의 신작 [몽상가들]은 이 당시의 프랑스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훔친 키스]는 당시 몰아치던 혁명의 분위기를 전혀 눈치챌 수 없는 영화입니다. 감독과 배우들은 그런 사회 분위기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비록 이중생활을 하던 때였다고는 하지만 작품은 대단히 재미있고 매력적입니다. 영화 애호가들이 트뤼포의 영화중 특별히 이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오마쥬로 표현할 만한 장면들이 넘칠정도로 많고 배우들 특유의 코믹적 대사와 표정연기 등이 압권이며, 사설탐정 이라든지 주인공의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는 모습 등에서 이야기의 재미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