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위험한 놀이 - 박쥐 **1/2, 거친 녀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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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12-18 18:37 조회2,7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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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2
박찬욱 감독. 송강호, 김옥빈, 김해숙, 신하균 출연.
생명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인간의 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게 된 신부, 게다가 찬란한 햇빛을 가까이할 수 없게 된 신부. 곰곰이 제가 만약 그런 몹쓸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를 생각해봤습니다. 답이 안 나오더군요. 가족과 아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내가 그동안 걸어왔던 길과 내 이름이 엉뚱하게 해석되지 않는 방법을 택해 조용히 사라져 산골 어딘가에서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연구해볼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끔찍한 괴물이 된 내 생명을 연장하고자 구차하게 선과 악, 구원과 죄의식의 복잡한 퍼즐에 뛰어들 엄두는 나지 않을 것 같군요.
당대 현실과는 무관한 무국적 장르 안에서 담을 쌓고 즐기는 박찬욱 감독의 기존 오락에 섹스와 폭력의 기교만 늘어난 작품으로 결론 내립니다. 그런데 이왕 놀이를 추구하려면 좀 더 막 나갔어야 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어두컴컴한 화면 저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화끈하게 보여주는 걸 미학의 훼손이라고 생각한다면 감독의 장기인 장르 놀이와 뭔가 엇박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2009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브래드 피트, 멜라니 로랑, 크리스토프 왈츠, 일라이 로스 출연.
반면에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막 나갑니다.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고 밝은 화면 안에서 무엇이든 거침없이 해결합니다. 나찌 복장의 상대를 죽여 머리를 벗겨 내거나 야구방망이로 적군의 머리를 내려치는 건 아무런 장식도 기교도 없는 작은 숲에서 이루어집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미장센공간이나 근사한 문양의 벽지로 도배된 어두컴컴한 실내가 아니고요. 스파이로 활약하던 하멜스마크라는 여배우가 등장하는 접선 장소도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지하 술집이었죠.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거나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 일 따위를 과감하게 탈피한 이야기 전개도 어떤 강박적인 틀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하게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의지로 보여 과연 타란티노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답게 수다도 여전했습니다. 상대를 억누르고 긴장으로 이끄는 교묘한 언어유희가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몇 개의 치명적인 오류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데가 많고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는 법이죠.
나찌 친위대의 란다 대령이 보인 의심병은 여러 군데에서 비정상적이었습니다. 짜증이 날 정도였죠. 영화에서 스파이인 하멜스마크는 분명히 독일의 유명 여배우입니다. 그런데 단지 술집 총격 현장에 그녀의 사인이 적힌 손수건이 발견되었다 해서 그 배우를 간첩으로 의심할 수 있을까요? 술집에 있던 어떤 병사가 예전에 그녀로부터 사인을 받았다가 간직하고 있던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술집에 버러져 있던 구두가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다고 곧바로 그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이는 황당한 장면은 아무리 전시 중인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무모한 행동이었죠. 나중에 이중첩자로 위장해 살아남으려는 계획과도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럴려면 여자를 죽일 이유도 없었죠. 지하 술집에서 독일군 소령의 의심이나 영사실로 에마뉴엘을 찾아와 산통을 깨는 프레더릭 병사의 행동이나 짜증을 유발하는 데 대단한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말의 장난질에 빠져 있다가 생겨난 오류들입니다.
어설프게 마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날려버린 마지막 장면의 호쾌함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저는 이 영화로부터도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는 무척 좋아서 취하고 기억할 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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