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타미 리 존스 -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장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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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8:07 조회2,7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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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 리 존스 감독. 타미 리 존스, 배리 펩퍼 출연.
이런 경이적인 영화를 볼 때면 항상 느끼는 것! 영화를 보고 그 느낌을 글로 남긴다는 건 영화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영화는 영화 볼 때의 순수한 감정 그 상태에서 진실 된 것인데, 글로 옮기는 순간 영화는 이미 자신의 경험적 사건들과 중첩되어 조금 전에 본 영화와는 다른 정서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글에 실리게 되지는 않을까? 글의 기교를 위해 떠올린 온갖 고정적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고 영화가 준 감동의 순간은 이미 저만치 가 있는데 훗날 기억의 편의를 위해 지금 몇 개의 이미지만으로 영화를 재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장에서 같이 일하며 따뜻한 우정을 나누었던 피트(타미 리 존스)와 멕시코인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사이를 갈라놓은 건 새로 전입 온 매정한 국경수비대원 마이크(배리 페퍼)의 오발이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온 멕시코 사람이 자신에게 총격을 가하는 것으로 착각한 마이크가 근처에 있던 에스트라다를 쏜 것입니다. 그의 시신은 곧바로 누구의 짓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땅에 묻혔지만, 살인자를 찾아나선 피트는 이내 그게 국경수비대원 마이크의 행위였음을 알게 되고 그를 납치합니다. 그리고는 에스트라다의 시신을 파내 말에 싣고 마이크를 수갑 채운 뒤 함께 멕시코의 아름다운 마을 히메네스로 떠나게 됩니다. 그곳은 에스트라다의 고향이며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살고 있다는 곳입니다.
여정 중간에서 만난 노인, 사막과 협곡을 건너 멕시코의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왜 자신이 이런 무모하고 위험한 짓에 동행자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에 쌓여 있던 마이크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 놓습니다. 그는 부패해가는 시신을 가지고 멕시코까지 건너가는 피트를 미쳤다고 보고 원하는 걸 이루면 바로 자신을 죽일 거라고 믿고 있죠. 그러나 무의식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사는 인간을 대표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이 캐릭터는, 죽이는 것보다 더 이상적인 복수는 죄를 지은 자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 피터라는 의식의 인간형을 보면서 변해가는 감정 이상의 것을 깨닫게 됩니다.
히메네스의 존재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적당한 위치에 정해진 그곳에다 멜키아데스의 세 번째 장례식을 치러준 뒤 그의 사진 앞에서 마이크는 매일 고통받고 후회하고 있다고, 당신의 삶을 빼앗은 것을 용서해 달라고 절규합니다. 실수도 고의도 아닌 그 중간에서 벌어진 일의 여파를 끔찍하게 경험한 그는 훗날 무모한 여정의 고통보다는 변화한 자신을 더 처절한 심정으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고의적 살인의 짐을 지고도 평생 죄의식 없이 살아가게 될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노예들은 누가 구원해줘야 하는 걸까요? 하나님? 정치인?
형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묘사했던 [스트레이트스토리]에 그랬던 것처럼,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장례식]을 저는 앞으로 열 번 이상 더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인물의 대사 하나, 동작 하나, 표정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유혹으로 가득한 명작이기 때문이며, 남북이 갈려있는 우리나라에서 먼저 생각해낼 수 있었던 줄거리라는 점에서도 매우 친숙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말을 타고 터벅터벅 뿌연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피트의 뒷모습에는, 김기덕의 [시간]에는 없는 감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성의 억압보다 심각한 건 감성의 억압임을 [시간]에서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멜키아데스를 고향에 묻어주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겠다는 피트의 무모한 행동에서 느껴진 감동은 일종에 이성에게 눌려져 있던 감성의 해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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