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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으로 - 용서받지 못한 자 **1/2 사랑해, 말순씨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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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7:52 조회2,9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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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 The Unforgiven 2005 ★★1/2

unfo.jpg윤종빈 감독. 하정우, 서장원, 윤종빈 출연.

이 영화의 장점은 군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게 좋은 기억이었다면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건 현재의 삶에 활력소가 될 것이고, 나쁜 기억이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괴롭혔던 인간이나 군대라는 집단에 대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지금은 얼마든지 봐줄 용의가 있었을 겁니다. 간간이 유머도 섞여 있어서 아마도 홍보만 더 되었다면 적지 않게 흥행도 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군대라는 닫힌 사회를 진실하게 그려보겠다는 의도는 높이 살만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눈여겨볼 만한 주장이나 스타일, 매력 등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발한 창조적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사랑해, 말순씨 2005 ★★1/2

malsun.jpg박흥식 감독. 문소리, 이재응, 윤진서 출연.

박흥식 감독의 영화답게 따뜻하고 정감이 갑니다. film 2.0에서 마침 궁금했던 박흥식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한 긴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 영화를 본 모든 분들이 같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돼 아래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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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편집위원
당신 영화에는 아버지를 일부러 묘사하지 않으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인어공주>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더니 <사랑해, 말순씨>에선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박흥식 감독
또 그 얘긴가? 음… 아마도 내겐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모양이다.(웃음)

김영진 편집위원
<사랑해, 말순씨>는 이야기 구성의 원근감이 촘촘하다. 중학교 1학년생인 주인공 광호의 시야 밖 멀리선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서부터 전두환의 집권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의 정치적 질서가 어른거리고 있고, 광호의 일상에선 어머니와의 잡다한 실랑이에서 옆집 누나에 대한 짝사랑에 이르기까지 성장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아버지의 존재감은 그렇게 광호의 시야 바깥에서 멀리 펼쳐지는 가부장적 질서가 일상에 파고들어 올 수 있는 매개였을지 모른다.

박흥식 감독
아마도 아직 그것과 대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거다. 아직은 대면하고 싶지 않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가능해질 것이다.

김영진 편집위원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노동자로서 돈 벌러 간 것으로 돼 있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 가족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기는 데도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박흥식 감독
시나리오에는 아버지가 다녀가는 것으로 돼 있었다. 촬영 막바지에 빼기로 결심했다. 찍어놓았다가 편집 단계에서 뺀 것이 아니라 아예 찍지 않았다. 이 영화는 주인공 소년 광호와 여동생 혜숙을 보여주며 끝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성장통을 치른 광호가 거울을 보며 중학교 3학년이 됐다고 중얼거릴 때의 느낌이 좋았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찍은 거니까.

김영진 편집위원
첫 장면에 크레딧이 뜰 때 광호가 등교하는 동네 골목 곳곳을 카메라가 부감으로 훑으며 이동하는 장면은 좋던데, 어떻게 그 좁은 공간에서 그런 이동 화면을 찍을 수 있었나.

박흥식 감독
알아주니 기쁘다.(웃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자재를 써서 찍은 거다. 레일을 깔고 지미집 장치를 썼다. 애초부터 골목길이 다닥다닥 붙은 광호가 사는 동네의 공간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 동네가 정확히 1980년 무렵의 분위기는 아니다. 1990년대 초반 분위기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 동네의 오밀조밀한 느낌에서 그 시대가 배어나오길 원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그뿐만 아니라 광호가 늘 동네에서 마주치며 싸우는 정신박약아 재명과 추격전을 벌일 때도 카메라 이동이 날렵해서 놀랐다.

박흥식 감독
그 장면, 엄청 많이 찍은 거다. 두 배우가 3일 동안 달렸다. 스테디캠을 달고 인물들과 함께 달린 건데, 골목길이지만 생동감을 보여줘야 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이 영화에선 현재 서울에서 보기 힘든 것들이 많이 나온다.

박흥식 감독
골목길, 입식 부엌, 마당의 장독대, 집 안 구석의 자그마한 채소밭… 다 그렇지. 오픈 세트로 만들어낸 것인데 특히 부엌과 장독대에 신경을 많이 썼다. 원래 한 달간 빌린 집의 공간 구조는 그렇게 돼 있지 않았는데 미술부가 다 만들어낸 작품이다.

김영진 편집위원
세 들어 사는 옆방 누나가 외출하기만을 기다려 그녀의 방 안을 엿보고 싶은 광호가 쏟아지는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으며 장독대 위에 숨어 있는 장면의 느낌 같은 것은….

박흥식 감독
그렇다. 지금의 서울 가옥 공간 구조에서는 나오기 힘든 장면이다. 공간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정서가 있다. 부엌도 그렇고.

김영진 편집위원
예전에 대다수 집의 부엌이 입식이었던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없으면 부엌에 들어가 부뚜막 솥의 찬밥을 꺼내 김치 등 반찬을 꺼내 우적우적 먹을 때의 편안한 기분이 이 영화에 잘 살아 있다.

박흥식 감독
내가 특히 옛날식 부엌의 느낌을 좋아한다. 어렸을 적에도 난 유난히 부엌에 드나드는 걸 좋아했다. 사내자식이 웬 부엌 출입이냐고 할머니와 아버지는 싫어하셨지만 난 자장소스를 사다가 감자만 잘라 넣은 자장면도 스스로 만들어 먹고 그랬다. 부엌이 이상하게 편했다. 그리고 부엌은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에게는 특히 편안한 공간이다. 어머니가 속상한 일이 있으면 부엌에서 혼자 몰래 우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던 것 같다. 가부장의 힘이 지금보다 셌던 예전에 어머니들에게 부엌은 노동의 공간이자 동시에 안전한 휴식을 주는 은신처이기도 했다. 그런 데서 오는 친밀감이 있는 것 같다.

김영진 편집위원
<사랑해, 말순씨>는 부엌은 물론이고 방 안 내부를 잡은 화면들의 질감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런 것들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좁고 구질구질한 예전의 가옥 구조에서 아름다움을 뽑아낸다.

박흥식 감독
최영택 감독과 <인어공주>에서 이미 호흡이 잘 맞았고, 이번 영화에서도 수월하게 진행됐다. <인어공주> 때 자연광을 하도 고집해서 고생을 좀 했는데 이 영화에선 인공광을 많이 쓸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역시 자연광을 기다렸다가 많이 잡아낸 편이다. 그건 다 스탭들의 공로다.

김영진 편집위원
수챗구멍이 있는 바깥 개수대에 ‘고무다라’가 놓여 있는 것을 정물화처럼 보여주는 화면, 또는 부엌에서 밥 하려고 플라스틱 소쿠리에 쌀과 물을 부은 후 손바닥을 담가 물의 양을 어림 재보는 광호 엄마 말순의 손가락을 보여주는 화면 등이 갖는 포근한 아름다움도 좋다.

박흥식 감독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화면이 그런 것이다. 그런 화면들이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준다면 클라이맥스에서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될 때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사랑해, 말순씨>는 사실 당신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개봉했을 때도 데뷔작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고 고백했던 작품이다. <인어공주>가 끝나고 이렇게 빨리 이 영화를 찍을 줄 몰랐다.

박흥식 감독
내겐 충전이 필요했다. 내 안의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선 빨리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어공주>가 거의 모든 언론의 지지를 받았으며 극장에 온 관객들로부터도 호평 받았는데,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좌절이 왔고 빨리 극복하고 싶었다. 내가 찍고 싶은 영화를 연출하면서 기운을 회복하고 싶었다. 투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을 때도 혼자 부지런히 헌팅을 다니며 부지런을 떨었다.

김영진 편집위원
이 영화 제목이 여럿 있었지, 아마. <엄마 얼굴 예쁘네요>로 들었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

박흥식 감독
오랫동안 고민했다. <사랑해, 말순씨>는 이창동 감독의 아이디어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 끙끙대고 있을 때 이창동 감독이 하루에 하나씩 네 개의 제목을 보내줬다. 그중 확 마음을 당긴 것이<사랑해, 말순씨>다.

김영진 편집위원
예산이 비교적 빡빡했다고 들었는데.

박흥식 감독
순 제작비가 16억원가량 들었다. 강행군을 했다. 제작비 절감의 상당 부분은 배우들과 스탭들 인건비를 깎은 탓이다. 함께 일한 모든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인어공주> 때 일했던 스탭들 다수와 이번 영화에서도 함께했다. 흥행은 좀 안 됐지만 그들은 <인어공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좋은 기억으로 이 영화에서 평균 받는 개런티의 60%만 받고 일한 것이다. 문소리씨도 출연료를 줄이는 데 동의했고, 나부터 솔선수범하자는 취지로 <인어공주> 때 받은 돈의 50%만 요구했다. <인어공주>도 안 됐는데 무슨 염치로 돈을 많이 들이겠는가. 소재가 큰 것이 아니라 제작비를 줄여 가겠다고 처음부터 다짐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사랑해, 말순씨>의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당신의 성장 체험 속에 각인된 인물들에게서 끄집어낸 걸까.

박흥식 감독
내 영화가 참 관습적이다. 성장 영화라고 하면, 동네에는 바보가 있고 학교에는 깡패 친구가 있고 옆집에는 예쁜 누나가 있다. 그게 성장 영화의 공식이다.(웃음) 하지만 실제 내 삶이 그랬다. 관습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보편적인 호소력을 주는 원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광호의 학교 친구 철호의 캐릭터는 내 실제 초등학교 친구에게서 그대로 따왔다.

김영진 편집위원
그 철호라는 캐릭터가 독특하다. 손가락을 두 개 잃어 늘 바지춤에 손을 집어넣고 다닌다. 말수가 적고 싸움을 잘하지만 결국 퇴학당하고 한 번쯤 자신을 쫓아낸 선생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와 기물을 부수는 친구가 곧잘 주위에 있었다. 누구나 대하기를 꺼려하지만 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는 친구다.

박흥식 감독
철호는 손가락 두개가 없었던 실제 내 동네 친구였다.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는데, 어렸을 때 불발탄 가지고 놀다가 손가락이 잘렸다. 영화에서도 손가락 잘리는 회상 장면이 있는데, 왠지 그의 시점으로 플래시백이 나오면 화면 흐름이 깨질 것 같아 뺐다. 어릴 때 친하게 지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 사이가 멀어졌다. 나는 모범생이었고 그 친구는 깡패가 됐다. 가까이 하기에 부담스러워 서먹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철호가 체육 시간 후 운동장 구석에서 “야 흥식아 너 한 번 업어 봐도 되냐”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날 들쳐 업고 운동장을 두 바퀴정도 돌았다. 그때 ‘얘가 날 정말 친구로 생각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경험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 볼까 했으나 너무 감상적이라 포기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철호는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다. 빵 하나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수돗물을 먹는 장면이 있다. 입 안에 감도는 그 막막함이 전달되는 듯했는데, 그때 광호가 다가가 ‘네 도시락 내가 싸올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별명을 부른다.

박흥식 감독
별명을 불러준다는 게, 나는 너를 친구로 생각한다는 간접적인 표현이다. ‘몽키’라고 부르니까 ‘띨빵’이라고 응답한다. 그들 서로만 이해하는 신호 같은 거지. 철호의 모습은 모성에 대한 결핍이 굉장히 강한 아이다. 실제 철호의 엄마는 늘 노름을 하고, 아이가 뭘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녀석이 우리 엄마를 참 많이 좋아했다. 우리 집에 놀러오면 우리 엄마가 밥도 차려주고, 아들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들 해주고 그렇게 잘 챙겨줬지.

김영진 편집위원
광호와 한 동네에 사는 정신박약아 재명은 왜 자꾸 광호의 중학생 모자를 뺏는 건가.

박흥식 감독
재명이 그렇게 구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집 동생이 중학생이었는데 재명이가 동생 교복을 몰래 한 번 입었다가 동생에게 무지하게 두들겨 맞았다. 그러니까 그 뒤로 얘가 만만한 내 모자를 뺏어 썼다. 마지막 환상 장면에서 재명이가 교복을 입고 나타난 이유가 그거다. 이 영화, 알고 보면 등장인물의 히스토리가 굉장히 풍부하다. 그걸 다 묘사했다간 3시간 상영 시간도 모자란다. 모든 장면에 함축적으로 다 우겨넣었다. 자세히 음미해 보면 그런 압축적 묘사가 꽤 있다.

김영진 편집위원
광호의 같은 학급 친구들은 연기자들인가.

박흥식 감독
아니다. 문소리, 이재응, 윤진서, 이한위 등 몇몇 배우를 제외하면 이 영화의 출연진은 모두 비전문 배우다. 특히 광호 주변의 아이들은 비전문 배우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캐스팅이 진행될 때부터 광호 옆에 배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대사를 매끄럽게 못하더라도 실제 아이들의 느낌이 묻어나오는 게 더 중요하다. <인어공주> 때 이미 비전문 연기자인 꼬마를 써서 성공한 적도 있고 해서 자신이 있었다. 광호와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 모두 오남중학교 학생이고 그들 사이가 실제로 친한 친구들인데 서로 어울리는 장면에선 그들끼리 잘 놀며 스스럼없이 찍었다.

김영진 편집위원
영화 속 한 장면에서 공납금을 잃어버리고 우는 아이의 연기는 정말 그럴 듯했다.

박흥식 감독
그건 연기가 아니다. 눈 밑에 양파즙을 발라줬더니 그렇게 쥐어짜는 울음을 터뜨렸다.(웃음) 한 번에 오케이 났다. 스탭들 모두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 현장에서 우연히 얻어지는 것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 프로덕션 기간이 두 달 반이었고, 촬영 횟수는 49회였다.

김영진 편집위원
광호 역의 이재응의 연기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박흥식 감독
이재응은 이 영화의 120신 중 108신에 등장한다. 거의 혼자서 극을 이끌어간다. 대단한 아역 배우다. 문소리씨와 환상의 복식조를 이루는 것 봐라. 현장에서 보면 가끔 희열이 왔다. 내가 캐스팅을 잘하는 감독이다.(웃음) 부유한 친구 집에 광호와 광호 엄마가 함께 찾아가는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문소리와 이재응 두 사람이 부잣집 거실 장식을 보며 서로 소곤거리는 장면을 봐라. 거기서 창조되는 그들의 숱한 디테일과 호흡이 짝 맞는 광경을 연출자로서 보고 있으면 기뻐서 입이 벌어진다. 그 장면의 느낌이 좋아 포스터로 쓰려고도 생각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첫 장면이 이 영화의 후반부에 나온다. 근조등이 걸려 있는 집 앞 골목길에서 주인공 소년이 울고 있는 장면이다.

박흥식 감독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결국 만들지 못하는 감독들이 많다. 난 이 장면을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혹시 첫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될까봐 걱정했고, 만들 기회가 있을 때 써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설경구의 회상 장면에 그 화면을 넣은 것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본 사람들은 모두 데자부 같은 것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찍었다. <사랑해, 말순씨> 속의 광호가 성장한 모습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설경구가 연기한 동수의 모습이다. 송해성 감독은 농담으로 “경구가 자기 어릴 적 모습을 좀 봐야 하는데”라고 했다.(웃음) 그 말이 맞다.

김영진 편집위원
이 영화에서 문소리의 연기에 대해 감독으로서 고맙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박흥식 감독
그렇다. 젊은 여배우가 중학생 아들을 둔 아줌마로 나왔다. 이 영화에서 문소리가 보여준 연기는 이전 영화와 좀 다른 면이 있다. 문소리는 지금까지 좀 무거운 영화에 주로 출연했기 때문에 스크린에서 비치는 이미지와 자연인의 이미지 사이에 간극이 크다. 실제의 문소리는 호탕하고 장난도 잘 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편하게 대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문소리의 매력을 영화에도 옮기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 문소리를 어떤 이전 영화에서보다 많이 웃고 씩씩하고 활달하다.

김영진 편집위원
주인공 광호의 편에서 엄마를 보는 시각이 재미있다. 엄마는 집에서는 그저 편한 존재이지만 밖에 나가면 창피하게 느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못 사는 집 사춘기 아이들이 곧잘 자기 엄마에 대해 그런 마음을 품는다. 우리 엄마는 왜 다른 집 엄마처럼 예쁘지도, 세련되지도, 똑똑하지도 않을까, 그런 원망 말이다.

박흥식 감독
버스에서 자리를 새치기하는 엄마의 모습에 황당해져서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외면하고. (웃음) 당신이 말한 부분에 추가할 것이 있다면 나는 이 영화에서 문소리가 연기하는 엄마 캐릭터에 친구 같은 친근함을 더해주고 싶었다. 문소리씨에게도 촬영 전에 엄마와 아들이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듯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소리씨는 적극 동의했다. 실제 나는 그렇게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흥미로운 캐릭터로 구축되려면 친근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에서 조금은 벗어나면서도 동시에 전형성을 갖는 느낌으로 말이다. 문소리는 젊고 재미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친구다. 그런 매력을 영화 속에 투영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보면 엄마는 광호와 정말 더 친해지고 싶다는 듯이 광호와 스킨십도 자주 하고 아주 허물없이 군다. 거기서 오는 청량감이 있을 것이다.

김영진 편집위원
광호가 몽정했을 때 엄마가 보인 반응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창피해 하는 아들을 씩씩하게 위로한다. “하이타이 풀어서 빡빡 빨아줄 테니 빤스 버리지 마라”고 하면서.(웃음)

박흥식 감독
실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엄마의 반응은 아니다. 그렇게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가정의 부모는 성적인 문제가 자식에게 생기면 그저 쉬쉬할 뿐이다. 난 처음 몽정했을 때 속옷을 태워버렸다. 나에게 몽정은 큰 쇼크였다. 그렇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려면 쇼크가 아닌 재미있게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마지막에 집의 구석구석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장면이 참 매력적이다. 사라진 어머니의 손길이 스치는 것으로 보이더라.

박흥식 감독
그 장면이 원래는 첫 장면이었다. 빛이 집안의 구석구석을 비추면서 엄마를 찾는 광호의 목소리가 세 번 들리고 영화가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찍고 난 후에 마지막 부분에서 광호가 엄마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그래서 이 장면을 떠올렸고 뒷부분에 가져다 붙여보았다. 그랬더니 내러티브상으로 훨씬 매끄러워졌다.

김영진 편집위원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주위 사람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낸다는 것이다. 성장과 상실은 함께 온다. 영화 속 주인공 광호는 아직 세상의 질서를, 어른들의 질서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의 정치적 현실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멀리서 어른거린다. 광호는 그것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아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는 폭력적인 세상의 법칙 속에서 자기 주변의 인물이 하나둘씩 떠나가는 것을 본다. 그중 가장 난폭한 이별은 물론 죽음일 것이다. 그렇게 운명적인 진실까지 포함해서 광호가 챙기지 못한 현실의 상실감을 위로하는 듯한 환상의 잔치 장면이 말미에 나온다.

박흥식 감독
그 장면, 정말 고민이었다. 하늘이 보이는 옥상이나 완전히 개방된 초원도 고려했으나 결국 현재 편집본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광활한 해방감을 주진 않지만 광호의 감정을 따라간다면 광호의 집 안마당에서 판타지가 나오는 것도 괜찮았다. 처음에는 레이 찰스의 곡을 사용해 밝은 느낌으로 연출하려 했는데, 왠지 생뚱맞았다. 그래서 광호의 기억을 더듬어나가는 아련한 느낌으로 그 장면을 연출했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아빠는 출장 중>을 생각해 보자. 주인공 꼬마가 처한 현실은 정치적으로 억압적이고 암울하지만 밤에 돌아다니는 아이의 몽유병만큼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꿈을 꿀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세상에 아이의 몽유병만은 통제 안 되는 상황이다. 내가 1979년과 1980년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설정한 이유가 거기 있다. 1년 동안 대통령이 세 번 바뀌는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아이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누가 이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있나? 아무도 막지 못한다. 나는 그런 배짱으로 찍었다. 전두환이 아무리 하늘을 날 기세로 권력을 누렸어도 이 아이의 성장은 막지 못했잖아, 보라 우리는 성장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살아온 시대의 공기가 폭력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성장했다. 그것 자체가 대단히 훌륭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전두환이 프로야구 개막일에 시구하는 모습이 방송으로 중계될 때 캐스터와 해설자의 논평은 가관이었다. 그렇게 아둔한 아부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비애감이 들 만큼. 광호는 전자 대리점 앞을 지나다가 컬러텔레비전으로 그 광경을 본다. 그런데 그 장면을 나중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집어넣었다.

박흥식 감독
괜히 쓸데없이 주제의 무게감을 입히고 싶지 않았다. 그 장면이나 그 직전에 아이들이 팬티만 입고 신체검사를 받는 장면이 있다. 벽에는 전두환의 대형 초상 사진이 걸려 있는 앞에서 아이들이 무장해제하고 신체검사를 받는다. 상징적인 의미화가 있겠지만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내 영화를 꼭 정치적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를 원 없이 했다. 허접한 노총각의 삶에서부터 우리 세대의 어머니의 삶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는 내 어릴 적 모습이 투영된 영화까지 만들었다. <사랑해, 말순씨>로 일단락을 이뤘으니 다음에는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고 싶다.

- 이 인터뷰에 대한 저작권은 film2.0 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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