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노출 - 뮌헨 *** 크래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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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7:56 조회2,4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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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에릭 바나, 다니엘 크레이그, 키애런 하인즈, 마티유 카소비츠 출연.
우선 작품의 포장부터 얘기하고 싶네요. 제일 맘에 드는 부분은 토니 쿠시너, 에릭 로스의 각본입니다. 시종일관 침착하고 진지한 전개로 작품의 의미를 생명력 있는 모습으로 전달해주고 있었습니다. 야누스 카민스키의 촬영은 언제나 굉장하구요. 있는 듯 없는 듯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릭 카터의 프로덕션 디자인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뒤에서는 일급 항해사들의 개성을 잘 조율하고 배치하는 특급 항해사 스필버그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고, 다행히 [뮌헨]의 외형은 그의 명성에 어울릴 만한 작품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아마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에 작품상을 내주는 대신 후보로 오른 나머지 4개 부문은 거의 [뮌헨]이 가져가지 않을까 예상하게 되더군요. 평론가들의 호응도 좋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스필버그에게 불리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모두가 아는 것인데, 스필버그가 유태인이나 팔레스타인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고 테러리즘과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순수하게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가족주의도 중요한 메시지로 포함시키고 있죠.
스필버그는 [캣치 미 이프 유 캔]에서 보여주듯 비교적 적확하고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감독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의도나 설득법은 애매하거나 어렵거나 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주전쟁]도 과거의 SF소설에 대한 설렘과 매혹으로 출발했다기보다는, 현재 미국 사회의 현실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기획이었다는 점을 영화의 여러 군데서 드러냈기 때문에 그 현실을 싫어하는 반대자들에게 쉬운 비판의 명분을 제공한 경우였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그렇고 [쉰들러 리스트]도 그랬습니다.
[뮌헨]이 과연 중립적이기만 한 영화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그의 설득법으로 볼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은밀한 의도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역시 제한적인 자유로움 속에서 일정의 한계를 보여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검은 9월단과 그 배후 인물을 사살하는 에브너(애릭 바나) 그 자신도 피해자임을 보여주는 데에 핵심이 있습니다. 거대한 문명의 충돌 사이에 존재하는 힘없는 개인의 희생을 다루면서 평화가 정답임을 외치고 있죠.
그러나 그 가운데 우리는 이렇게 고민하고 죄책감을 느끼는데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스트들은 그렇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동시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분쟁의 원인을 제거하고 그것으로 이득을 보거나 음흉한 의도를 가진 세력들의 자진 포기가 선행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이해하는 것처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갈등의 지속적 발생을 원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서 문제입니다.
이슬람을 바탕으로 하는 아랍 문명과 기독교로 똘똘 뭉친 유럽 문명의 대립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이고, 그 뿌리에는 기독교와 반기독교를 분리하여 기독교 세력의 응집을 위해 반기독교 세력을 제거하고 정복해도 좋다는 정당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저개발의 문명으로부터 종교적 이단 취급을 받게 되어 공격의 대상이 된 이슬람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평화적인 메시지를 그 교리로 삼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나 몇 개 집단의 비극을 묘사하면서 지엽적이고 허술하게 봉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에브너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필버그의 평화의 메시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의 이해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검은 9월단이 왜 세계적인 축제의 마당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고 사살했는지. 그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팔레스타인의 처지에서 그들의 눈이 되어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스필버그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그 미국 혹은 유태인 감독에게 용감하다는 박수를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건 그들만의 중립입니다.
크래쉬 Crash 2004 ★★1/2
폴 해기스 감독. 산드라 블록, 돈 치들, 맷 딜런 출연.
이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영화 내내 할리우드 영화답지 않게 감성적으로 유지돼 왔던 감독의 메시지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져야 하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엇인지는 보시면 알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인종갈등의 문제를 가볍게 마무리하는 걸 보면 [크래쉬]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은 확실히 과장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우연히 이 영화의 주요 출연자들이 나와 자신이 경험한 인종편견의 다양한 사례를 가지고 활발하게 토론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이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안에 존재하는 편견과 오해를 드러내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명작이라고 마무리 하더라구요. 배우들의 솔직한 얘기도 마음에 들어 영화에 대해 신뢰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본 영화는 너무 쉽게 감정에 치우치는 대사가 툭툭 튀어나오고 음악으로 감동을 주려는 의도도 엿보이며, 한편으로는 진지한 구석도 있어서 단순한 성격의 작품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흑인을 보살펴주다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 안에 있던 편견을 드러내 사고를 저지르는 백인 경찰의 모습에서 잠시나마 진정성이 있어 보이기도 했었죠.
그러나 이내 그 믿음은 사라졌습니다. 미국의 백인과 흑인만 화해하면 만사가 오케이라도 되는 듯한 장면. 미국판 우물안 개구리 영화로 전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갈등, 그것도 아주 우습게... 이건 아닙니다. 끌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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