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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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7:40 조회2,7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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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이영애, 최민식 출연.
박찬욱 감독의 6번째 장편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드디어 극장 개봉을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여러 형태의 고정 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달은 해가 꾸는 꿈]을 보고 소수지만 제일 먼저 생겨난 고정 팬이 있었을 것이고, [공동 경비 구역 JSA]를 보고 감탄한 팬이 이어서 생겨났을 것이고, [복수는 나의 것]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에 매료된 관객이 있었을 것이고, 또 그 영화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흥행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와 상대적으로 박찬욱의 영화 중 덜 관심을 받았다는 희귀함 만으로 그의 팬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마침내 [올드보이]를 보고 새로 생겨난 팬들과, 칸 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덤으로 불어난 팬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얼치기라고 부를 수 있는 팬들은 [복수는 나의 것]에 호감을 가지지 못했음에도 스스로 자기최면을 해 팬이 된 사람들과, [올드보이]의 칸 영화제 수상 때문에 자신의 영화 취향을 급격히 [올드보이] 취향으로 바꾼 사람들입니다. 바로 [친절한 금자씨]를 보는 동안 내 바로 뒷자리에서 별로 웃기지도 않은 장면인데도 극장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낄낄거리면서 시종일관 애인과 부스럭대며 오버하더니,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제일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올드보이] 이후 바노와영화에서는 줄곧 박찬욱 감독이 그런 얼치기 팬들을 털어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복수 3부작이 아니라 4부작이 됐든 10부작이 됐든, 순한 복수든 폭력적인 복수든 관계하지 않을 테니 얼치기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모두 제거해버림으로써 그들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김기덕의 영화에서 '엽기'가 떼어지고, 홍상수 영화에서 '진부함'이 극복되듯이, 박찬욱 영화에서 B급도 아니고 컬트도 아니고 상업주의일 뿐인 그 양식이 걷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흥행이 안 되더라도 영화가 재미없다고 비판받더라도 사이코가 아니라 정상인이 등장하고, 엽기적인 것이 아니라 개성으로 이루어진 인물들과 만나길 원했습니다.
야구장에서 치어리더와 함께 큰 스피커와 앰프를 갖다놓고 대중가요를 틀어 소란스럽게 응원하는 3류 응원방식을 없애야 하듯이(아직도 안 없어지는 게 희한할 정도로 수준 이하의 응원), 한국의 영화시장에서 영화를 별로 사랑하지도, 관심이 있지도 않으면서 엉터리 관점과 베끼기 리뷰로 영화 투자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감독의 철학을 흔들리게 하는 얼치기들을 더이상 영화에 관심을 두지 말도록 떨어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성 없는 주장이 절대 아닙니다. 시장은 넓습니다. 60억 인구를 버려두고 고작 4천만을 상대로 영화를 만들면서 적자네 뭐네, 투자금 회수가 안되네, 뭐 르네상스 운운하던 시기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위기가 어쩌느니 하는 우물안 개구리식 논의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화를 사랑하고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개성이 다양하고 가치관이 다른 많은 국가의 사람들을 상대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럴려면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소재를 개발하고 더 철저하게 만들어야 하겠죠. 그럼 더이상 얼치기들에 의존하지 않아도 영화사들의 수익성은 개선될 겁니다.
한국영화에서 뜨내기 얼치기들을 몰아내려면 먼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느냐보다 '왜'와 '그래서?'를 먼저 자문해보고 고민하는 작업이 현시점의 한국영화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어떻게' 만드느냐를 관심으로 하는 영상 표현에 많이 이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화에 잔인한 장면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 걸 즐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건 잘못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 속에 나오는 폭력성과 인간의 잔혹성을 문제 삼곤 합니다. [올드보이]를 보고 낙지를 먹는 장면이나 이를 뽑는 등 잔악한 장면을 문제 삼은 분들이 많았죠. 하지만, 제 생각에 그 사람들은 정말 영화를 많이 안 보신 분들입니다. [네크로맨틱] 시리즈나 [피를 빠는 변태들] 시리즈, [홀로코스트]와 그 아류작들 등 수많은 폭력, 잔혹한 영화들은 세상에 수도 없이 많습니다. 잔인한 장면을 보고 단지 그 시각적 폭력성에만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영화에 무지한 겁니다.
그리고 영화 안에서 엽기 사이코가 빠지고 그 자리에 정상적이고 개성 있는 사람이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집단적 일체감 같은 게 무의식 중에 존재합니다. 누군가 일탈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거죠. 이런 사회에선 발전이 멈춥니다. 최근에 그런 것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극단으로 흘렀습니다. 바로 엽기 사이코의 등장이죠. 이건 위에 말한 잔혹한 영상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 엽기 사이코들의 행동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그들의 정신입니다. 왜 개성 있는 존재들의 등장이 아니라 여전히 집단성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엽기적 인간형을 등장시켰을까요. 이것 역시 중심에 안전한 우리가 있어야 하고 그 외부에 비정상적인 엽기인들을 놓아야 한다는 무의식의 발현입니다. 이곳에 엽기인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자유롭고 개성 있는 사람으로 대체하면 사회는 다양해지고 구성원들의 생각은 넓게 확장합니다. [올드보이]에서의 이우진,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동진과 류 등 비정상적인 엽기 사이코들이 영화에서 사라지면 시장을 왜곡하는 거품관객도 사라집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내용에 찬성하든 그렇지 않든 현재 대한민국 영화감독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 코멘트할 때에는 항상 그가 몰고 다니는 얼치기 영화팬을 언급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 여러 가지 평론가들 사이에서 여러 다른 시점의 평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부분 속죄나 영혼의 구원이라는 테마에 중점을 두고 본 리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구원이라는 것은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를 이해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단어는 아니고, 박찬욱 감독이 알맹이 없는 기교의 향연이라는 기존 영화들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삽입한 수단으로 보였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가 기본적으로 허약하고 빈틈이 많은 이야기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친절한 금자씨]는 뭔가 다른 설득력있는 주제가 필요했을 겁니다. 창문으로 후진해 들어오는 카메라나 양분된 화면, 빠른 편집, 목소리가 달라지는 성우의 나래이션, 무표정한 금자의 표정, 어설프지만 실험적인 통역 장면 등 여전히 스타일을 강조하는 화면이 많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영화의 후반부에 주제의식을 강조해 표현하면서 금자의 복수가 개인이 아닌 타인에까지 미치는 행위임을 보여주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유괴된 아이들의 부모가 폐교에 모여 백선생의 처리를 두고 우왕좌왕 토론하는 장면이나, 금자의 복수 이후에 벌어지는 환상과 불완전한 구원 묘사를 비롯해 감독의 주된 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던 후반부의 모든 시도들에서 감독의 절실함이나 진정성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박찬욱의 스타일이라고 보기엔 좀 낯선 마무리였습니다. 그것은 실험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적인 접근의 미숙함 때문이거나 상대적으로 덜 자신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작건 크건 죄를 저지르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했던 때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고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말대로 [친절한 금자씨]에서 무엇보다 그것을 묘사하는 것에 중점적인 관심을 두었다면, 영화는 후반부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내용상으로 좀더 다의적이고 시각적 움직임은 간결해지며, 기존 작품들에서 보여준 테크닉들은 상당 부분 양보한 작품으로 나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고, 때문에 그 부분은 영화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굳이 말로 설명해야 할 때 필요한 설정된 의미로 남겨두고, 영화의 나머지는 자신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가지고 이리저리 표현하는 방식 등의 기교에 여전히 관심을 두며 그것에 주력하고 있는 영상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은 계속 전진한다고 봅니다. [복수는 나의 것]보다 [올드보이]가 낫고, [올드보이]보다 [친절한 금자씨]를 더 좋게 봤습니다. 비록 얼치기 팬을 완전히 배반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전 작품들의 주인공에 비해 금자는 뚜렷한 이유와 목표가 있고 역할이 있으며 마침내 그것을 해냅니다. 그것으로 속죄를 하든, 구원을 받든, 아이와 화해를 하든, 함께 살든, 혹은 그것에 전면적으로 실패를 하든 관계없이 금자는 그 복수로 희망의 한가운데 서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불완전한 결말이지만 아무런 위협 없이 자신의 의지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사회 부조리는 광대합니다. 그래서 금자는 여전히 복수를 계속 해야만 합니다.
사족1 : 주요 사이트의 네티즌 리뷰를 보면 악평들이 제법 많죠. 좋은 현상입니다.
사족2 : 어쨌든 전 박찬욱 영화에 처음으로 별 셋 줬습니다.
사족3 : 납치된 아이들의 부모가 백선생의 시체를 들것에 올리는 후반부 장면에서 언뜻 보기에 백선생의 모습이 최민식이 아니라 박찬욱 감독처럼 보였습니다. 잘못 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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