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쟁 1953 **1/2 우주전쟁 20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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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7:31 조회2,4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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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해스킨 감독. 진 배리, 앤 로빈슨 출연.
지구의 대기 속에 있던 바이러스에 면역이 되지 않아 막강한 기술력을 소유한 화성의 외계인들이 지구정복을 눈앞에 두고 최후를 맞이한다는 1953년판 [우주전쟁]은 이미 그것 자체로는 시대가 오래 흘러 낡게 퇴색한 이야기지만, 꿈의 공장이라 하여 한참 상상의 지평을 넓혀가던 시절의 할리우드를 떠올리며 감상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쏟아져 나온 거대 자본의 모험, 판타지 영화들이 그렇듯이 말이죠.
그러나 웰즈에 의해 1898년에 발표된 같은 제목의 소설은 이제 겨우 세계를 좀 알기 시작했다고 자부하던 당시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인류에게 지구 외의 위험한 존재를 그리면서 경각심을 주는 효과를 불러왔지만, 1953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핵'이라는 가공할 무기가 지배하던 냉전상황에서의 내부 결속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역시 스필버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2005년판 [우주전쟁] 또한 단순히 판타지를 즐기는 차원의 영화로 보기 어려운 시기에 나왔다는 점에서, 애석하게도 웰즈가 처음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우주전쟁]이 가지는 매력적이고 즐거운 판타지는 처음부터 정치가 펼쳐놓은 그물에 백 년이 넘도록 갇혀 있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1/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탐 크루즈, 저스틴 차트윈, 다코타 패닝, 팀 로빈스 출연.
대강 3가지 정도로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이 평범한 영화 이상이 아님을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작품이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매력이 떨어지는 영화였는데요. 생각 같아서는 ★★을 주고 싶지만 세계감독순위 9위에 올려놓은 감독에 대한 애정이 발동해 평균점으로 유지하려 합니다.
첫째로, 반전영화라고 하기엔 전쟁의 공포를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극대화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중반 이후부터 심리묘사가 뒷전으로 밀리고 마치 공룡처럼 보이는 외계인을 등장시키면서 볼거리에 치중한 것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초반에 레이 페리어(탐 크루즈 역)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를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대단한 긴장감을 주었던 게 사실입니다. 레이첼(다코타 패닝 역)이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고 모두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그린 그 관점을 영화 끝까지 유지했더라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승패를 떠나서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협적이며 무섭고, 불필요한 것인지 모두가 느끼고 공감하게 하는 데 성공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자신의 기술적 재능을 과신한 덕에 몇 개의 군중씬과 전투씬의 화려함을 얻는 대신 반전의 깃발을 꺾고 영화를 평범한 액션 오락물로 만들어 버린 대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외계 생명체에 관한 창의적 표현이 부족했습니다. 위에 언급한대로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나오는 외계인들은 마치 공룡처럼 보였습니다. 팀 로빈스가 연기한 오길비라는 이상한 인물과 만난 그 지하실에서 외계인들은 정말 멍청했습니다. 20세기의 인간들도 각종 탐지기와 추적기를 통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적을 찾아내는 마당에, 번개까지 타고 내려온 양반들께서 그 웬 어처구니 없는 짓이란 말입니까.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갸웃거리는 게 꼭 침팬지가 따로 없더군요. 그리고 정말 대단한 기술력을 가진 그들이라면, 지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한 줌도 안 되는 지역을 밟고 다니고 지하 구석구석 살피며 사람들을 살상하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을 갈아 피를 쏟아내는 기계라는 터무니없는 상상력은 이전의 SF영화들에서 확실히 후퇴한 모습입니다.
참고로, 100만 년 전에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들이 미래를 위해 파괴 기계를 땅속에 묻어 놓았다는,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그럴 듯한 상상을 가지고 마치 그것을 스토리 전개의 진실로 간주하며 말도 안된다고 영화를 비난하는 것은 수준 이하의 논리이기 때문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맞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굳이 맞을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바 그대로 사상적 관점에 관한 것입니다. 스필버그가 미국의 입장에서 특히 백인의 입장에서 사물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은 그의 자유이고 문제 삼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본의는 아니더라도 반대로 미국인이 아니라고 해서, 백인이 아니라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경계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빼앗기거나 영향을 주었다면 우리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스필버그를 비난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외부의 위협적인 적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 때에는 어떤 식으로 묘사를 하며 어떤 시선을 유지해야 하느냐는 누구보다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영화 곳곳에 오해받을 만한 장면을 별 의식 없이 배치했다는 사실은, 그의 국가나 인류에 관한 생각들이 최근 정치집단 가운데 어디에 더 가깝게 속해있는지를 짐작하게 하고, 여태까지의 빛나는 작품들을 생각해볼 때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 근심하고 걱정하게 되는 거죠.
원작에서처럼 외계인들이 지구의 대기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자멸하는 결론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면, 방어막이 해체되었다며 굳이 소수의 미군에 의해 공격당하고 파괴되는 외계인을 그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짓밟힌 미국의 자존심을 위해 런닝타임을 배려한다는 게 참 씁쓸하더군요. 게다가 처참히 무너진 다른 도시들에 비해 보스턴은 왜 그리 멀쩡한지요. 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 추위를 견디기 위한 외피를 벗고 쓸쓸함이 걷혀가는 거리의 한적한 오후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탈출에 성공한 가족의 조우가 어우러지니 마치 천국이 따로 없고 따뜻한 나라의 안전한 안식처가 바로 여기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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