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별로였다 2 - 여자, 정혜 20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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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7:24 조회2,2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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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 김지수, 황정민 출연.
이 영화가 만약 정혜라는 여자가 혼자 사는 아파트와 직장인 우편취급소 사이를 오가며 자기만의 세상을 발견하는 단순한 일상을 보여준 작품이라면, 시종일관 흔들리는 화면과 빗나간 초점 등 부담스런 표현의 방법에도 불구하고 지지했을 것입니다. 아무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도, 뚜렷한 사건이 없어도,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그런 영화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자, 정혜]는 정혜라는 여자를 원만하고 평범한 다른 여자들과 달리 매우 이상한 여자처럼 보이게 한 설정 때문에, 그래서 자기들과 다른 삶을 사는 주인공의 행동과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관객들이 하나씩 늘어나 피식~하는 웃음이 극장을 울리게 되었을 때 이 영화는 평범한 그저 그런 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간, 결혼의 실패, 어머니의 죽음 등 결국 정혜가 지금 그렇게 외로움을 안고 폐쇄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과거의 갖가지 이유들을 나열하면서 마치 관객이 타자의 실패한 인생을 엿보기라도 하듯이 기획된 이 영화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가끔 호프집에 가서 혼자 술을 마시고도 싶고, 잘 알지 못하는 이성을 집에 초대하고도 싶으며, 알람소리가 크게 울려도 크게 느끼지 못하고 한동안 켜두고 싶을 때가 있으며, 혼자 떠들썩한 시장과 밤거리를 쏘다니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자, 정혜]에서 정혜는 일반적인 외로움과 우울증을 조금씩이나마 가지고 있는 그런 평범한 여자가 아닙니다. 남과 다른 과거가 있는 문제여성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들을 자연스럽고 평범한, 전혀 유별나지 않은 주인공을 통해서 표현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요? 정혜를 특별한 사람으로 그려놓고는 구경하며 안심하는 어떤 그룹에게 이 영화는 "그래, 그녀는 사랑할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 조금만 더 세상과 대화하라."라며 나와 영화를 구별하여 느꼈을 테지만, 정혜가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여자로 그려졌을 때 정혜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내 주변의 세상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토쿄 마리골드]라는 일본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도 정혜와 비슷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면서 일상의 작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작품입니다. 다나카 레나가 연기한 여주인공은 매우 고독하고 외로운 여자였지만 [여자, 정혜]에서처럼 과거에 우울한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현재가 위태로운 그런 여자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냥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보낼 뿐이고 남자를 만났다가 헤어졌을 뿐이었죠. 거기엔 이유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복수도 없고 폭력도 없고 강간도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여자, 정혜]라는 평론가들에게 환영받은 한국영화조차도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일본영화와 비교해보며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다시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미안하다,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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