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영화 두 편 - [주홍글씨] **1/2 , [아홉살 인생]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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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7:15 조회3,0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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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감독. 한석규, 이은주, 엄지원, 성현아 출연.
바노와영화에서는 초반보다 후반이 강한 영화를 좋아합니다. 어느 영화나 시작해서 몇 분간은 주인공과 그 주변의 관계가 어떻게 전제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반복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들이 이어지게 되는데 바로 그 시간 동안 영화의 첫인상이 결정되죠. 여기서 실패하면 흔히들 후반으로 갈수록 관객을 사로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아마 [주홍글씨]를 보신 분이라면 초반에 형사 기훈(한석규 역)이 차를 타고 가며 아리아를 따라부르는 장면에서 엄청난 실망을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평화를 이야기하며 깨진 머리를 가지고 넉살 좋게 말장난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 꺼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끼셨을 겁니다. [주홍글씨]의 출발은 정말 '블루 노트 서울'이라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희(이은주 역)의 장면까지 하나같이 모방과 베끼기로 일관하고 있어서 별 하나 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영화가 약간 달라져 갔습니다. 이야기가 크게는 사진관에서의 살인사건과, 기훈의 아내와 정부 사이의 관계 등 두 가지로 나눠져 진행되는데 기훈이 사진관에서 살해당한 사장의 부인인 경희(성현아 역)를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고 조사하면서 이제 이 살인사건은 기훈의 사생활과 묘하게 얽히며 바로 자신의 욕망스토리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느끼게 되죠.
그런데 기훈에게 누가 범인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바로 트렁크에서의 그 지옥 같은 경험을 끝내고 파멸에 이른 후 형사를 그만두면서 경희와 만나게 된 기훈에게 도덕적 분노는 남의 일이 됩니다. 죄를 짓거나 그것을 캐내 처벌하는 그저 다른 역할이 있을 뿐 기훈은 오로지 욕망에 사로잡혀 판단을 잃어버린 지 오래 지난 뒤였죠.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매우 차갑게 다가왔습니다. 부인에 대한 정성 못지않게 가희를 대하는 기훈의 모습이 그렇고, 불륜이라는 것도 결국 기훈을 그렇게 망가뜨려 놓았지만 여전히 그는 전혀 나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후회의 눈물은 가정의 파탄에 대한 것인지 가희를 잃은 것 때문인지 불분명했습니다. "사랑하면 괜찮은 것이냐"는 경희의 마지막 대사는 더욱 그러하고 가희와 수현(엄지원 역)의 동성애도 이성애와 동일하게 결코 애절하지 못합니다. 마치 현대판 사랑은 그냥 깨짐이 두려워 조용히 스타일을 유지한 채 묻고 지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논할 가치가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영화 안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했느냐입니다. 영화에서 죄의 주체이자 벌의 주체이기도 했던 기훈을 중심으로 한 흥미있는 논쟁이 '씨네 21'에서 있었는데 어느 쪽 관점에 더 신뢰가 갔는지보다는 [주홍글씨]가 그렇게까지 할만한 영화였는지를 먼저 보게 되더군요. 미용실 장면에서 한 남자 미용사를 혀로 핥는 기훈의 장면을 보면서 비록 이 영화가 사랑, 결혼, 불륜이라는 것과 동성애, 스릴러라는 장르의 묘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버무리면서 풍부하게 생각할 거리와 볼 거리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결코 독창적인 작품으로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베끼기 전통이 창궐하고 있는 영화계에서 독창성이라는 것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화들이 늘어나는 이 시점의 한국영화에 가장 요구되는 것 중 하나라는 점에서도 더욱 이 영화의 깊이가 그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상상의 부족함에 묻혀버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 더 의외의 화면과 이야기로 연출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결국 후반으로 갈수록 강한 영화는 되지 못했습니다. 감독의 전작인 [인터뷰]에 대한 인상도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변혁 감독의 작품은 바노와영화가 나름대로 정한 한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존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야 할 한석규도 여전히 독립적인 캐릭터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마구 방황하는 것으로 보이고, 3명의 여배우 역시 평범한 모습만 보였습니다.
추가 한가지, 자꾸 어떤 전형적인 틀 안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이 영화를 장르라는 규칙 속에 집어넣고 얼마나 성실하게 장르에서 마땅히 존재해야 할 요소들을 적절하게 뽑아냈느냐는 것만으로 오로지 영화적 가치를 판단하는 관객이 있다는 거죠. 감독조차 의도하고 있지 않은 모든 영화를 그런 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상상력은 극히 제한되기 시작합니다. 장르의 규칙은 선구적인 작가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며 매번 혁신적인 창조자들에 의해서 보기 좋게 갱신되면서 발전하는 동적인 것이지 마치 자연의 절대적인 진리처럼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관객들은 장르라는 개념적 전통이 무너지면 불안한 그 어떤 것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아홉살 인생 2004 **1/2
윤인호 감독. 김석, 이세영, 나아현 출연.
동명의 베스트 소설 [아홉살 인생]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어린 아역 배우들의 활약을 본 것은 재미있었고 신선한 면도 있어서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시골로 전학 오게 된 서울 아이가 같은 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중심의 영화였는데 전체적으로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느낌이었지만 선생님의 폭력을 굳이 그렇게 강조해서 넣을 필요가 있었나 싶었고 그밖에 주인공 남자 아이의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짱을 놓고 겨루는 것들은 좀 상투적이어서 크게 감동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면에, 김석군이나 이세영양은 아이들답지 않게 영화에 푹 빠져서 연기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아현양도 너무 자연스러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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