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영화 두 편 - [빈집] *** , [알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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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노 작성일09-02-13 17:16 조회2,85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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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이승연, 재희 출연.
태석(재희 역)은 빈집을 찾아 떠도는 사람입니다. 집 열쇠구멍에 전단지를 붙여 놓았다가 며칠이 지나도 전단지가 그대로인 집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곳은 비어 있습니다. 주인이 사라진 집에서 태석은 요리를 해먹고 고장이 난 제품을 고쳐 놓기도 하며, 정성스럽게 청소와 빨래도 합니다. 그는 비어 있는 집에 들어가 그렇게 사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디카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멀쩡하게 잘 살아 있는 자신에 대한 의미부여입니다.
그러다가 또 한 명의 침묵하는 영혼을 만납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주지 못한 채 침묵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황량한 자신의 빈집에 들어와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는 등 집의 구석구석을 살아 있음으로 채워넣는 그를 숨어서 지켜보며 이끌리게 됩니다. 선화(이승연 역)는 태석의 마법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마법 같은 태석을 창조한 것입니다.
태석과 선화는 그곳을 탈출해 다른 빈집을 떠돕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안전한 현실과 영원한 안식처는 없습니다. 사진작가의 아파트(놀랍게도 누드 이승연의 사진이 걸려 있다), 권투선수의 아파트, 평온한 전통 한옥가옥, 그리고 쓸쓸히 혼자 죽어가는 독거노인의 허름한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방문한 집들에는 각각 쓸쓸한 인간사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여자의 운명. 태석이 감옥에 갇히면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선화는 다시 웃음을 잃습니다.
현실은 감옥의 태석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고 괴롭힙니다. 손바닥에 그린 눈으로 이미 현실을 부정하는 태석의 정신은 육체를 떠났음을 암시하고, 그런 동안 태석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집들을 차례로 여행하며 영혼의 교류를 계속하던 선화와 유령이 되어 재회합니다. 선화 의식 속의 이 판타지는 이 세상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감독의 결론에 가장 부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의 행복했던 순간은 태석과 함께 올라선 저울이 0이 되는 바로 그 순간까지였음을 표현하고 있죠. 여전히 그녀를 괴롭힌 남편은 현실 속에서 온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빈집]은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럽 영화의 거장들의 작품을 닮았습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나 조각처럼 분위기와 몸짓으로 감지할 수밖에 없는 불명의 매혹적인 느낌이 존재했습니다. 그것이 소음 없는 침묵에서 탄생한 신비감이든 골프공과 3번 아연(이 영화의 영어 제목)으로 상징화되는 현실 파괴적인 분리에서 오는 것이든 쉽게 추출되지 않고 내면 깊숙이 존재하던 느낌들이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말하면서 영혼을 맑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찢어진 책을 주워담아 묶었던 그동안의 영화에서 탈피해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드디어 잘 만들어진 하나의 '명품' 영화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은 굉장히 눈여겨볼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사마리아]부터 오래 김기덕을 괴롭혀 왔던 '엽기' 딱지는 떼어졌습니다. 세상을 방황하다 미쳐버린 주인공을 계속 등장시키는 일은 멈춰졌습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관객들로부터 아무것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의 실험, 그것이 벗겨진 김기덕의 영화는 아름다웠습니다.
'명품'이란 그 가치가 순간순간 시대에 따라 변화되지 않는 고귀한 것에 붙여지는 이름입니다. 영화가 명작이 되고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 영화가 관객 내면의 숨결과 소통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견디기 힘든 세상의 짐을 벗어버리려는, 그래서 순수한 영혼의 양만으로 무게를 제로로 만들려는 [빈집]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내 내면의 목소리를 어떻게 키워왔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자신에게 있어서 '좋은영화'를 정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그것 말입니다.
사족: 아무래도 이승연 남편으로 출연한 배우의 딱딱한 연기나, 복서가 자신의 집에서 벽에 걸린 포스터의 눈 부분이 벗겨진 것을 보고 "봐, 누가 왔다 갔잖아!"라며 어설픈 대사를 하는 것 등은 고쳤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뭐 괜찮지만...
알포인트 2004 ★★★
공수창 감독. 감우성, 손병호, 오태경 출연.
이 작품은 꽤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해답풀이집도 거의 읽어 보았습니다. 꽤 곤란했던 영화나, 그 해석이나 모두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고 재미있었습니다. 감우성이 등장한 올해 두 편의 영화(거미숲, 알포인트)는 모두 기존의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알포인트의 공포를 만약 감우성의 악몽이라고 본다면 감우성은 두 영화에서 모두 관념의 세계를 떠돌며 자기 자신과 싸운 고독한 희생자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호러'라는 이미지 덧칠하기, 꼭 어떤 식으로든 규정을 하고 편을 갈라놔야 직성이 풀리는 언론과 평론가들의 습관은 여전했고, 얼마나 더 무서웠느냐를 놓고 심각하게 논박하는 관객들은 영화의 반대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알포인트]안에 제국주의의 함정이 있다고까지 나아간 글도 있었죠. 그러나 [알포인트]는 비록 미국-베트남 전쟁의 한구석에 끼어버린 한국군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도 아니고 공포도 아닌 '죄의식'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중위(감우성 역)가 베트남의 한 사창가에서 잠에 들어버리면서 시작된 그 악몽(다른 해석도 가능)으로,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베트남전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87년 이전의 현대사 전체를 유령으로 넘치게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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