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공중부양일기: 개미>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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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디렉터스 작성일26-09-02 14:33 조회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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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일기>
내 이름은 김정훈이다. 이제 12살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어리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학생이 되는 내후년이면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그때가 되면 키도 커지고 멋있게 수염도 나며 용돈도 달라진다.
술을 마시는 형들도 많이 봤다. 꼭 그런 걸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봐도 좋은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난 항상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이젠 몇 달만 더 지나면 어린애 취급받는 일은 없어질 거로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새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시장이 근처에 있어서 항상 시끌벅적하고 골목길이 복잡하게 꼬불꼬불 이어져 있던 서울의 오래된 동내에 살다가 주변이 모두 아파트로만 되어 있는 지방의 조용한 곳으로 오니 처음엔 조금 낯설고 심심했지만, 며칠 지내보니 마음도 편해지고 기분 좋은 날도 많아져 할머니를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나한테 사실 선택권은 없었다. 나처럼 혼자된 지 오래되신 외로운 할머니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분이다. 마찬가지로 할머니에게도 나는 귀여운 손자 이상의 존재일 것이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꼬박꼬박 도시락을 싸주시고 종일 집안 정리를 하시다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늘 대문 앞에 나와 의자를 놓고 앉아 계시곤 했었다. 내가 놀다가 늦어 몰래 집에 들어와도 모른 척해주시고 평소처럼 대해주시는 할머니가 나는 좋았고 언제나 잘 따랐다.
할머니는 동물을 좋아하셔서 동네에 버려진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고 세심한 보호가 필요하면 종종 집에 데리고 오기도 하셨다. 그래서 항상 우리 집 마당은 동물들로 넘쳐났다. 종종 동네 사람들은 밤에 개소리 때문에 시끄럽다거나 동네 곳곳에 개똥이 넘쳐나는 건 모두 우리 때문이라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누구도 할머니의 동물 사랑의 순수함과 선한 마음을 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할머니와 내가 그런 정든 동네를 떠나 새로 둥지를 튼 낯선 곳은 우선 공기가 좋았다. 콧구멍으로 힘껏 들이마신 공기의 깨끗함은 예전과 확실히 달랐다. 술 마시고 밤늦게까지 큰 소리를 내며 싸우는 사람이 없으니 그것도 좋았다. 전에는 정말 잠을 못 잘 정도로 창밖이 시끄러웠다. 잘은 모르지만, 아파트라서 도둑이 들어올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들었다. 우리 새 동네는 이렇게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방 두 개에 불과한 좁은 아파트로 오게 된 것은 아마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재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때문은 아닐까 괜히 걱정되기도 했다. 철없이 시골의 공기 좋고 깨끗한 집이라고 마냥 좋아만 해서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언젠가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월요일에 나는 근처 초등학교에 할머니와 함께 가서 전학 절차를 밟았다. 며칠간 아프다며 미루었던 일이다. 작은 버스를 타고 10분쯤 걸려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니 정면으로 운동장도 넓고 건물도 깨끗한 학교가 나타났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라고 들었다.
교무실에서 상담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할머니는 그곳에 앉아 있던 선생님들을 일일이 붙잡고 잘 부탁한다며 나를 앞세우고 인사를 하셨다. 할머니는 아마 옛날 우리 엄마를 데리고 학교에 갔을 때도 지금처럼 하셨을 것 같다. 이젠 나이가 드셨고 다리가 아파 잘 걷지도 못하시는데 또 이런 일을 하게 되다니, 괜히 슬퍼졌다.
이 학교는 전에 다니던 곳과 분위기가 꽤 달랐다. 반을 배정받고 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살펴보니 아이들 한명 한명이 다 세련된 옷을 입고 있었다. 책가방도 공책도 비싸 보였다. 아이들은 머리 모양이나 옷이나 모든 게 촌스러운 나를 약간은 멀리하려는 듯 보였다. 내가 첫날 앉은 자리는 창문 쪽 빈자리였는데 짝꿍은 남자애였다. 그 녀석은 하루 내내 나한테 말도 걸지 않았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중간쯤에 이상한 과일가게가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주인아저씨가 지나가는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가끔 한 아이에게 사과를 잘라주며 씨익 웃곤 하는 것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는 아니었지만, 왠지 조심해야 할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그 길을 돌아서 가곤 했는데 하루는 깜박하고 그 앞을 지나간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 아저씨는 하필 나를 딱 노려보고 있다가 사과 한 쪽을 든 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서워서 그냥 달려 도망갔다.
며칠 후 할머니가 마련한 김밥가게가 문을 열었다. 겨우 테이블 3개만 있는 작은 가게였지만 아파트 입구에 있어서 그런지 며칠 지켜보니 손님은 적지 않게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나한테 해주시는 그 김밥 정도의 맛이라면 아마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종종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심해봤다. 결론은 그냥 학교를 잘 다니는 것뿐이었다.
애들 얼굴과 이름을 익혀가며 학교생활에 적응해온 지 얼마가 지났다. 하루는 집에 가는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여자애가 있었다. 선생님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는 효진이라는 키가 작은 애였다. 내가 멈춰서 뒤를 돌아보니까 바로 딴짓을 하고 있었지만 나를 따라온 게 분명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뭐해?”
“뭐가?”
“너 집이 이쪽이야?”
“응.”
효진이는 학교에서 항상 자기가 맨 앞자리에 앉으니 뒤에 앉는 내가 자기 얼굴을 잘 모를 거로 생각했는지 고개를 바짝 들고는 토끼 같은 큰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그럼 니가 앞에서 가.”
“그러지 뭐.”
나는 그냥 툭 던진 말이었는데 효진이는 삐졌는지 나를 휙 지나쳐 앞으로 쭉 걸어갔다. 그리고는 나와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걷다가 갈림길에서 우리 집과 다른 방향으로 갔다. 툴툴대며 걷는 효진이의 뒷모습을 별생각 없이 한참이나 서서 지켜봤는데 키가 정말 작긴 작았다. 마치 1학년 애 같았다. 그래도 처음 말해본 아인데 조금은 친절했어야 했다. 다음부턴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처음 우리 아파트 담장 길을 걷다가 높이가 낮은 나무와 꽃들로 빽빽한 화단에 들어가게 됐는데 개미, 거미 같은 작은 벌레들이 바닥을 많이 기어 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쿵쿵거리며 나타나자 개미들이 다들 놀랐는지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아주 바쁘게 여기저기로 대피하고 있었는데, 나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그걸로 도망 다니는 개미들 뒤를 쿡쿡 찌르며 괴롭혔다. 그걸 보고 화났는지 울타리 사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나뭇가지들에 앉아 있던 참새들이 시끄럽게 짹짹거렸다.
며칠 후에는 쪽지 시험이 있었는데 나한테는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일찍 끝내고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고 팔도 쭉 뻗으며 여유를 부렸더니 그게 보기 싫었는지 짝꿍이 나를 선생님한테 일렀다. 내가 자기 것을 베꼈다는 것이다. 나는 전학 온 첫날부터 말도 안 걸고 내 가방이나 팔이 자기 옷에 닿으면 곧장 먼지를 털듯 밀치기도 했던 이 밉상과는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쭉 무시하고 지내던 차였는데 그날 드디어 거짓말로 먼저 공격을 해온 것이다.
“커닝 안 했어요.”
“니가 팔로 툭툭 치면서 알려달라고 했잖아.”
“내가 언제?”
녀석의 거짓말은 정말 뻔뻔했다. 내가 그런 쉬운 문제도 몰라 커닝을 하려 했다니…… 억울했지만, 선생님은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내 표정과 시험지를 번갈아 보더니 굵은 자로 손바닥을 몇 대 때리고는 복도로 내쫓았다. 선생님이 미웠지만 난 그런 일에 신경 쓰는 소심한 애가 아니다. 대신, 이름이 대범이인 그 나쁜 놈은 언젠가는 꼭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그 일은 실천하지 못했다. 내가 맘이 여리고 우유부단한 점도 있었지만, 대범이도 그렇고 반의 몇몇 친구들도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점차 나한테 잘해줬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좀 불쌍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자기들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황이 그렇게 되니 굳이 그 애들과 다투며 지낼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대범이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녀석과 잘 지내볼까 하는 생각으로 변해버렸다. 잘된 일이었다. 학교에 가는 걸 싫어지게 만들던 문제 한 개를 해결했으니까.
그런데 그 사건 이후로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싸늘해서 걱정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마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은 그런 표정으로 나를 쏘아봤다. 내 고민을 눈치챘는지 어느 날 대범이가 말해줬다.
“노처녀 히스테리가 있어. 그냥 무시해.”
같은 반에 동수라는 애가 있었다. 목소리가 특이해 전학 온 둘째 날 이름을 알게 됐을 때부터 왠지 호감이 갔던 친구였다. 마치 외국 사람들이 요들송을 부를 때처럼 말을 하다가 자주 음정이 꺾이곤 하는데, 그때마다 동수는 흐지부지 말을 끝내는 버릇이 있었다. 난 그렇게 말하는 애를 처음 봐서 그런지 그 애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졌다. 그래서 하루는 동수를 할머니 분식집에 초대해 김밥과 떡볶이를 먹이고 집으로 가서 놀다가 같이 자고 다음 날에야 집에 보내준 적이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주 동수의 말투를 따라 말하며 놀리곤 했는데, 친해지고 보니 그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하려고 신경을 썼는데, 동수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이후부터는 그렇게 놀려대도 오히려 동수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우린 그렇게 조금씩 친해져 가고 있었다.
며칠 후 일요일에 대범이가 같이 만화방에 가자고 꼬드기는 걸 거절하고 대신 우리 아파트에서 가까운 개천으로 동수와 자전거를 타러 갔다. 내가 먼저 제안했는데, 동수가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덕여줘서 기분이 좋았다. 그 개천 주변은 아파트 주민들이 운동하러 많이 나오는 곳이었다. 개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 동네 주변의 새로운 곳들을 쉽게 발견하리라 생각해서 동수와 언젠가는 꼭 같이 탐험해보는 기분으로 갈 생각이었던 길이었다.
동수는 몸이 좀 약해 보이긴 했지만, 자전거는 아주 잘 탔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자전거를 사줘서 학교건 어디건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했다. 내 것에는 없는 여러 가지 부품들이 갖춰져 있는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잘 못 타서 자주 부딪치고 넘어졌던 애라는 걸 생각하면 녀석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개천 길을 따라 달렸다. 의외로 걸어가는 사람이 적어서 비교적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이었지만, 주변의 꽃이나 아파트들, 멀리 보이는 산,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는 하늘 등을 보며 천천히 달렸다. 나보다 한참 앞서가다가 느리게 가는 나와 보조를 맞추려고 가끔 멈춰있는 동수에게 조금 미안했다. 녀석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없는 모양이다.
개천가에 간격을 두고 자란 나무가 땅에 그림자를 만들어 놓은 곳을 지날 때면 일일이 그 나무 그림자 몇 개를 통과했는지 개수를 세어가며 페달을 밟기도 했다. 간혹 깊게 파인 땅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서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자전거가 덜컹거리는 일은 있었어도 꽤 달리는 재미가 있는 길이었다.
예전에 살던 곳은 골목길마다 오토바이나 사람이 많이 지나다녀서 학교 운동장 말고는 안심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마음껏 달릴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정말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다는 게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답답한 곳에서 어떻게 지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도 났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그렇게 한참을 달려 이젠 그만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곳보다 조금 더 멀리 가보니 자전거 길이 끝나고 곳곳에 돌부리가 박혀 있는 오솔길이 나왔다. 그 동네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완전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오르막이라 자전거 타기도 힘들었다.
“이리 더 가면 뭐가 나오는 거야?”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동수가 숨을 몰아쉬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나를 보며 불안한 듯 물었다.
“나도 몰라. 처음 오는 곳이거든.”
그냥 돌아가자고 할까 하다가 눈을 크게 뜨고 조금씩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는 동수를 보니 그런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마침 옆으로 차가 다니는 도로가 나와서 우린 그쪽으로 올라갔다. 가끔 먼지를 일으키며 트럭이 지나다니긴 했지만 좀 한산한 도로였다. 그 도로를 따라 다시 달렸다. 몇 분 지날 때마다 주변에 집 한 채씩 보였다. 작은 공장 같은 것도 있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사는 아파트나 학교 건물 같은 건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갔을 무렵, 더 멀리 가면 집에 돌아가는 길을 잃을 것 같아서 근처의 한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쉬었다가 그만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수와 내 마음이 딱 들어맞은 것이다. 어깨랑 다리도 아프고 몸 여기저기에서 땀도 많이 났다. 동수가 가게에서 하드와 과자를 사줘서 같이 나눠먹었다.
“이 정도면 꽤 많이 온 것 같다. 오늘은 그만 돌아갈까?”
“그래, 그럼 다음에 올 땐 저 산 아래까지 더 가보자.”
동수는 땀을 많이 흘리면서도 나처럼 이곳저곳 모험하듯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녀석이 손으로 가리킨 곳엔 큰 산이 있었다.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도 큰 산이 있었다. 저게 혹시 그 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한번 갔던 길이라 돌아오는 동안은 조금 여유가 있었다. 시간도 훨씬 절약됐다. 길을 알고 오니까 흥미는 좀 덜했지만, 좋은 친구와 즐겁게 자전거를 탔다고 생각하니 왠지 뿌듯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흐른 뒤부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시작됐다. 처음엔 찔끔찔끔 내려서 별 신경 안 썼는데 그러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소나기로 바뀌었다. 당장 비를 피할 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우린 흠뻑 젖고 말았다. 간신히 도착한 근처의 큰 나무 아래에서 비가 멈출 때까지 옷을 말리며 가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소나기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출발할 때 파랬던 하늘이 완전히 밤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해 비가 약간 수그러들 때마다 옷이 더 젖는 걸 감수하고 내달렸다.
결국, 그날 나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집에서 우산을 가져다가 동수를 집 근처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데 열이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되어 버렸다.
“어이구 이 녀석이 혼나려고. 왜 비는 맞고 댕겨.”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야단치며 약을 주셨다. 그걸 마시고 바로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조금 나아져서 약을 먹고 학교에 갔지만,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오전 수업까지만 마치고 중간에 조퇴했다. 그나마 나는 조금 나은 편이다. 그날 동수는 아예 결석했다. 아마 나처럼 감기가 옴팡 걸렸을 거다.
혼자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가로수 길의 보도블록 위로 어디에 숨어 있다가 길이 물에 젖으면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건지 모를 지렁이와 달팽이들이 많이 나와 있는 걸 보았다. 어떤 지렁이는 너무 커서 징그러웠다. 길이 좁은데 피해서 걷기도 힘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엔 열이 조금 더 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간신히 집에 돌아왔고 그날도 대충 손만 씻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잠들어 버렸다. 할머니는 한밤중에도 가끔씩 내 방에 들어와 찬 수건을 이마에 얹어주시고 가셨다. 그때마다 깨어났지만, 그냥 쭉 자는 척했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아서 전처럼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동수는 계속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날 너무 무리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가자고 해서 그런 일이 생겼으니 미안해서 동수네 집에 찾아가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동수가 걱정되지도 않는지 동수의 자리에 자기 책가방을 올려놓거나 수업 시간에 책상을 끌어가 자기들끼리 붙어 앉거나 했다. 특히 대범이는 동수의 책상을 지우개 따먹기 게임용으로 사용했다.
동수가 나타나지 않는 날이 더 늘어났다. 선생님은 아이들한테 동수가 금방 나아서 다시 학교에 나올 거라고만 말하셨다. 물론 나를 제외하곤 그 말을 심각하게 듣는 애들은 없었다.
“평소 보이지도 않던 앤데 막상 걔 없으니까 좀 심심하다. 넌 안 그러냐?”
점심시간에 아이들 반찬을 뺏어 먹는 습관이 들어버린 대범이는 중학교에 올라가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큰 놈이다. 내가 뭐라고 한다고 들을 애가 아니었기에 내버려 뒀다.
그렇게 벌써 동수가 결석한 지 열흘이 지났다. 난 안 되겠다 싶어서 수업이 끝나고 동수의 집에 가봤다. 선생님 말씀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사는 아파트 앞에서 전화해도, 입구에서 벨을 눌러도 동수를 만날 수는 없었다. 갑자기 이사 간 걸까?
한참을 기다리는데 문 앞 스피커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세요?”
힘없는 여자 목소리였다.
“저는 학교 친구 김정훈이라고 하는데요. 동수 있나요?”
“친구?”
곧 문이 열렸다. 어떤 여자분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마도 동수 어머니로 보였다.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동수…… 하늘나라에 갔다. 장례까지 마쳤는데 학교에 아직 알리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네?”
나는 갑자기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동수 어머니가 들어오라는 걸 마다하고 급히 인사를 한 뒤 정신없이 아파트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놀이터에서 정신이 나간 아이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어두워져서야 길을 빙빙 돌아 집에 돌아왔다. 슬프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동수에게 몇 년째 앓던 병이 있었다는 걸 다음날에서야 알게 됐다. 나는 너무 충격이 커서 한동안 제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동수가 죽었다는 죄책감도 있었다. 다른 애들에게 왕따를 당하고는 나에게 다가왔을 동수를 생각하면 나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던 이 아이들이 너무 밉고 무서웠다.
학생이 며칠째 결석을 하는 데도 신경도 안 쓰고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은 담임선생님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선생님은 분명히 동수가 몸이 안 좋은 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학교에서 단체 병문안 같은 거라도 갔어야 한다며 슬퍼하셨다. 갑자기 세상이 싫어졌다. 이런 경우를 뭐라고 하더라. 공…… 그래 공범이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동수를 죽인 공범이다.
며칠이 지났다. 하루는 밤새도록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천둥소리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마치 장맛비가 앞당겨져 한꺼번에 쏟아붓는 것 같았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창 쪽은 보지도 못했다. ‘번쩍!’하고 번개가 칠 때마다 방 안이 대낮처럼 환해졌다가 순식간에 시커메졌다.
환해질 때마다 방구석에 걸려 있는 옷걸이가 마치 귀신처럼 보였다. ‘저러다 진짜 귀신이 내 침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다음번에 번개가 쳐서 환해지면, 분명 귀신이랑 눈이 딱 마주칠 것 같았다. 그게 너무 무서워서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썼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서 이불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눈을 꼭 감은 채로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확 개어 있었다. 언제 그런 비가 내렸냐는 듯이. 학교 가는 길에 아파트 화단 길옆으로 익숙한 개미들의 행렬이 보였다.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아직 등교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으므로 앉아서 개미들을 관찰했다. 가끔 자기보다 큰 빵가루 같은 걸 들고 지나가는 개미도 있고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개미도 있었다. 여전히 생김새도 제각각인 작은 벌레들도 많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걸어갈 때 작은 벌레들은 어쩔 수 없이 밟히게 된다. 작아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심스럽게 땅만 쳐다보며 걷는 사람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바닥의 벌레들을 신경 쓰며 걷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동수를 떠나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날마다 길을 걸을 때면 어떻게 하면 개미들을 밟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지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땅만 보며 걷다 보니 맞은편에서 오는 자전거를 보지 못해 부딪칠 뻔한 적도 있었고, 너무 늦게 걷다가 지각을 하는 일도 생겼다. 예전엔 길 곳곳에 있는 개똥을 밟을까 봐 땅을 보며 걸었는데, 이젠 개미 같은 벌레들을 밟아서 혹시 죽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렇게 하는 걸 보면 내가 점차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어른이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항상 주변을 살피고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도울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셨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나이는 들었어도 여전히 철부지 어린애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족이나 친구들뿐만 아니라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이렇게 작은 생물들도 잘 지낼 수 있도록 걱정하고 신경을 써주는 나는 당장이라도 어른이 될 자격이 충분한 셈이었다.
동수가 하늘나라에 간 지도 한 달 정도 지났다. 아직 자려고 누우면 동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다음엔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 산 있는 데까지 한번 가보자고 말했을 때 그 친구의 밝은 표정이 꿈에 자주 나왔다. 가끔 실수로 효진이 얼굴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 반은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앞번호부터 순서대로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 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발표력과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서 매년 맡는 반마다 시행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괜히 쉬는 시간만 뺏는 거라는 아이들의 불만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의 얘기엔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교육 원칙을 지킨다며 매년 해왔던 것이라고 했다.
특별한 장기가 없는 나는 내 차례가 돌아오면 항상 피리를 불었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씩 차례가 돌아오기 때문에 거의 매일 피리를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솔직히 몇 번 해보니 그런 것들은 자신감이나 발표력 향상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냥 평상시 했던 것을 계속 반복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우리가 어떤 장기자랑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았고 점수를 주지도 않았다. 우린 그 시간이 그냥 지겹게만 느껴졌다.
하루는 평상시 기분이라면 문제없이 했을 장기자랑에서 실수를 하게 됐다. 그날 점심시간이 되고 내 차례가 오자 평소처럼 앞에 나왔는데 날마다 같은 곡만 연주하기 뭐해서 다른 걸 해보려고 했던 게 문제였다. 동수 생각이 나서 그 아이가 평소 흥얼거리던 찬송가를 연주한 것이다. 맙소사 찬송가라니……
예상대로 아이들 반응이 좋지 않았다. 원래부터 절반은 공을 차러 나가고 절반은 앉아 있어도 자기들끼리 모여 잡담을 하느라 앞에 나온 사람이 뭘 하든 별 신경을 쓰는 시간이 아니긴 하지만 그때 애들 시선이 너무 냉랭했던 건 사실이었다. 대범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책상에 엎드렸다. 다른 애들보다 그놈이 제일 미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난 내가 개미만도 못한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은 개미들이 부러웠다. 그렇지만 지켜보면 볼수록 나보다 더 고귀한 이 생명체들은 너무 위험했다. 특히 사람이 아주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사는 개미들은 더욱더 그랬다. 사람과 만나지 않는 풀숲에서 자기들끼리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면 좋을 텐데……
그날 오후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앉아 바닥의 개미들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사람이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어딜 그리 바삐 가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는 개미들이 조금 불쌍해 보였다.
‘그래도 나보단 낫다니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때 누가 말을 했다.
“뭐해?”
난 처음엔 소리가 하도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기에 나한테 하는 말인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개미들만 보고 있었다.
“뭐하냐구!”
이번엔 또렷하고 크게 들렸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상했다.
“어? 누구야?”
“난 톤토라고 해. 넌 정훈이지?”
“어…… 그런데, 어디에 있는 거야?”
“여긴 구름 위야. 자세한 건 묻지 마. 설명하기 힘드니까.”
나는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헛소리가 들리나 싶어서 벌떡 일어나 귀를 두드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어떻게 거기서 나한테 말을 해?”
“아…… 나는 가능해. 근데 무슨 고민이 있어?”
어느새 하늘 저 멀리에서 노랗고 밝은 공처럼 생긴 것이 천천히 내 앞으로 점점 가까이 왔다. 마치 만화에서 봤던 UFO 같았다. 그런데 너무 작아서 그 안에서 외계인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처음 보는 새 종류는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수박만 한 것이 내 눈앞 공중에 떠 있었다.
“지금 니가 말하는 거야?”
“그래, 내가 톤토야.”
“톤토?”
나는 잠깐 가만히 있었다. 누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울타리 너머로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외에 주위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나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 지금은 나와 너만의 시간이니까 다른 곳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넌 누군데?”
“음…… 글쎄 내가 누굴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널 돕고 싶어 한다는 거야. 어떻게 돕느냐구? 일단 말해봐. 무슨 고민이 있는지.”
노란 공 가운데에서 두 눈이 깜박거리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희미하지만, 코도 있고 입도 있었다. 왠지 강아지 같기도 하고 친근감이 느껴졌다.
“고민은…… 그냥 땅에 기어 다니는 개미나 작은 벌레들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한테 밟히지 않고 안심하며 다닐 수 있을지 하는 거야.”
“흐음…… 개미?”
“응, 아무 잘못도 없이 죽는 개미들이 불쌍해. 낮이라면 눈 크게 뜨고 잘 피하면서 걸으면 되지만 밤엔 그러지도 못해. 아예 안 보이니까 그냥 운에 맡기고 있거든. 미안하다, 제발 내 신발에 밟히지 말아라…… 그러면서.”
“글쎄…… 너의 말은 알겠지만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 살아 있는 것은 아니야. 네 주위는 모두 생명체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 중에도, 물에도, 음식에도, 우리 몸 안에도 말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걸 모두 보호할 순 없어.”
“그치만……”
나는 어떻게든 내가 이 생명을 지켜주고 싶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은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 일단 눈에 보이는 개미나 벌레들만이라도 어떻게 안 밟고 피해갈 방법이 없을까? 계속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내려다보며 걸을 순 없잖아.”
“그렇지…… 그래도 노력해봐. 웬만하면 한발 한발 천천히 걸으면서…… 알았지?”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해?”
“그래. 모든 생명체가 잘 보이도록 너의 눈이 좋아진다고 해서 더 달라질 건 없어. 오히려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뿐이야. 다음에 또 올게. 그럼……”
톤토라 불리는 그것은 곧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다. 그는 외계인이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지구의 생명체 따윈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답도 안 주고 서둘러 도망가듯이 사라지는 것만 보아도……
집에 돌아왔다. 영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도 안 먹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바로 누웠다. 난 어느새 학교에서의 창피했던 일보다는 개미들 생각에 더 빠지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개미들이 내 운동화에 밟혔을까? 그들 중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을 하던 가장 개미도 있었을 테고,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던 연애 개미도 있었을 텐데…… 내가 그들의 삶을 다 파괴한 셈이다. 괴로웠다.
톤토라는 외계인과 만난 그날 이후도 날마다 나는 개미들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집 근처 놀이터에서도 땅만 보고 걸었다.
하루는 운동장을 걷고 있었는데 지나치던 담임선생님이 왜 땅만 보고 걷느냐고 내게 물었다.
“개미 밟을까 봐서요.”
“아! 그렇구나……”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이상하게 쳐다보더니 더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기 학생 신경도 안 쓰는 선생님이 개미엔 관심이 있겠어?”
선생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화가 났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결심을 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절대 밟지 않고 걸을 테다!’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인도로 개미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아파트 담장 길이 시작하는 곳에 도착하면 특히 조심해야 했는데, 최대한 까치발을 하고는 한발 한발 조심히 걷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몇 차례 실수해서 개미를 밟은 적이 있었던 곳이라 더 조심해야 했다. 결심을 단단히 하기 전에는 큰 녀석들만 피해서 걷자는 생각이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길을 중간 정도 지났을 때 맞은편에서 몇 명의 아저씨들이 담배를 물고 가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바닥에 기어 다니는 생명엔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딱 그럴 것 같은 얼굴을 한 아저씨들이었다.
‘땅 좀 보란 말이야!’
인상을 팍 쓰고 속으로 외쳤다. 그렇지만 내 생각대로 행동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땅을 보기는커녕 시끄럽게 떠들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 그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가 나를 덮쳐 숨 막혀 죽을 뻔했다.
“캑캑-”
사람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거라고 들었는데, 보나 마나 저 아저씨들은 그 어떤 것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일 게 틀림없다. 겉모습만 어른이지 철없는 애나 다름없었다.
불만 가득 찡그린 얼굴로 다시 조심스레 걸었다. 그때, 하늘에서 다시 노란 공이 나타났다. 하늘 멀리서 뭔가가 천천히 내려오는 게 느껴져 쭉 쳐다보며 서 있는데 바로 그 노란 공이었다. 그것은 곧 내 앞까지 내려왔다. 난 이번엔 노란 공이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나를 정말 도와주려면 뭔가 해답을 달란 말이야!'
그런데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 대신 갑자기 내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너무 가벼워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약간 떠 있었다. 신기했다.
“해답을 찾았어. 널 약간 띄워주면 되잖아. 그치?”
톤토가 툭 던진 한마디. 이게 마술에서 자주 나오던 그 공중부양일까? 기분이 묘했다.
“뭐야, 이렇게 떠 있으면 걸을 수는 있는 거야?”
“그럼 당연하지. 걸어봐!”
처음엔 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힘을 냈더니 곧 어렵지 않게 마치 땅에 발을 대고 걸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난 엄지 손가락 길이 정도 허공에 떠 있었다. 신이 나서 팔을 마구 앞뒤로 흔들어 보았고 빙글빙글 돌아보기도 했다. 모든 게 마음대로 움직여졌다.
“됐지? 난 간다.”
“잠깐, 그럼…… 집에 가서는 어떻게 해? 계속 떠 있는 거야?”
“아니, 작은 생명체를 밟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걸을 때만 떠 있을 수 있을 거야. 네 마음이 내리는 진심의 명령에 따라서만 말이야. 알았지? 도움이 됐니? 이젠 진짜루 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톤토는 하늘로 뿅~하고 올라가더니 곧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공중에서 계속 걸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보면 아마도 내 걸음걸이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런데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은 그런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날 좀 보라고 손짓을 하며 외쳐보고 싶었지만 모두 무관심할 것 같아서 관뒀다. 대신 집에 가면 꼭 할머니한테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잘 태어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외계인을 만나서 신비한 능력까지 얻고 운이 좋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냥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발아래 개미들을 밟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남들이 하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는 게 더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밤에는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던 할머니에게 노란 공 톤토 얘기도 하고 직접 공중에 떠서 걷는 것도 보여주며 자랑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만 하셨다. 아마 할머니는 언젠가 나한테도 특별한 능력이 생길 거라고 믿어 오셨던 것 같다.
다음날 학교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내 능력을 숨기고 있다가 결정적일 때 한번 보여주면서 놀라게 해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보다 백 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구. 두고 봐. 흐흐흐.’
속으로 웃고 있는 내 모습이 표정으로만 드러난 게 아니라 소리도 났던 모양이다. 내 앞자리 여자애가 이상하게 뒤돌아보며 물었다.
“너 왜 그래?”
“어? 그냥…… 아무것도 아냐.”
마침내 점심시간이 됐고 내가 장기자랑을 할 차례가 왔다. 나는 피리를 꺼내지 않고 맨손으로 그냥 앞에 나갔다. 어느 때보다도 자신에 찬 내 모습에 애들은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속으로 공중부양 주문을 외웠다.
‘떠라! 떠라!’
두 팔을 벌리고 마치 모든 아이의 놀람과 부러움의 시선을 다 받아주겠다는 태도로 기세등등하게 서서 계속 외쳤다.
‘떠라! 보여줘. 그렇지!’
하지만 공중부양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실망한 채 쟤 왜 저러나 싶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맨 앞자리 효진이가 나한테 빨리 뭔가 하지 않고 뭐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눈을 매섭게 뜨고 중얼거리며 손으로 피리 부는 흉내를 냈다. 순간 이마에 땀이 났다. 다시 자리로 들어가 피리를 가지고 나오기엔 이미 늦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냥 두 손을 벌린 채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나도 모르게 그냥 웃음이 나와 버렸다.
노란 공 톤토가 한 말을 까먹었다. 공중부양이 안 되는 건 내 진심의 명령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근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아서 망신을 자초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가 옆 반 음악 선생님의 웃음소리를 흉내 내는 장기를 한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의도에는 맞지 않았지만, 반응이 좋았다. 박수를 쳐주는 애도 있고 웃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애들 표정을 살핀 뒤 의기양양하게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지만, 아무튼 언제라도 내 능력은 보여줄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한동안의 우울함을 벗어던지고 기분 좋게 집으로 오는 길에서도 이상하게 공중부양은 되지 않았다. 개미가 많이 돌아다니는 길인데, 이건 내 진심인데도 왜 안 되는지, 앞으로도 영원히 못 하게 되는 건 아닌지 싶어 톤토를 불렀다.
“톤토! 톤토!”
하늘에도 구름에도 아무리 불러도 톤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다시 까치발을 하고 조심스럽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는 공중부양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너무 불안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니다! 난 잘못한 게 없었다. 놀이터에서도 계속 하늘만 쳐다봤다. 노란공이 빨리 나타나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낙심하고 있던 다음날 밤 행운은 다시 찾아왔다. 오후부터 동네 아이와 야구공 놀이를 하고 있던 나는 날이 어두워지자 어느덧 공중에 약간 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깜짝 놀랐다.
“이것 봐! 다시 떠 있다구!”
나도 모르게 동네 아이에게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바닥에서 거의 손가락 하나 정도 높이로 떠 있었다. 나는 놀이터를 마구 뛰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아마 속으로 놀이터 바닥에 다니는 개미를 밟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공놀이 중간에도 끊임없이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능력이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동네 아이는 내가 좋아하며 뛰어다니는 걸 보고는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배고프다며 집에 돌아갔다. 그날 놀이터에서 처음 본 애인데 내 능력에 대한 질투심이 심한 아이인 것 같았다.
나는 미끄럼틀에 올라가 뛰어내려 보기도 하고 그네를 타고 멀리뛰기도 하면서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러다 잘못해서 옆으로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찧는 때는 있어도 두 발이 같이 땅에 닿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마치 내 발과 땅이 자석의 같은 극으로 되어 있어서 서로 밀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해도 균형을 잡고 서 있는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했다.
내가 신이 나서 팔팔하고 돌아다니는 게 너무 튀어 보였던 모양이다. 주위에 유모차를 끌고 아기와 함께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 몇 명이 나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순간 내 능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분 좋게 집 근처 동네를 돌아다녔다. 일부러 운전자들 잘 보이게 건널목을 건널 때도 높이 껑충껑충 뛰며 건넜고 슈퍼마켓 앞에서도, 오락실 앞에서도 춤을 추듯이 걸어 다녔다. 그 이상한 과일가게도 지나갔는데 주인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역시 사과를 반쪽 깎아 주셨다. 이번엔 도망가지 않았다. 날름 받아서 한입 베어 먹었다. 그래서 발을 땅에 대지 않고 붕붕 높이 뛰는 묘기를 보여줬다. 아저씨는 빙그레 웃어주셨다.
너무 오래 하다 보니 힘이 들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싶었다. 자랑하러 다닌다고 힘을 너무 소모한 것 같았다. 그렇게 보여줘도 박수 쳐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일부터는 쓸데없이 힘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집에 들어갔더니 이제 막 가게 문을 닫고 들어온 할머니가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일찍 들어오렴. 나보다는 먼저 들어와야지. 걱정되잖아.”
“네. 죄송요. 근데 뭐 먹을 거 없어요? 배고파요.”
나는 할머니가 가게에서 싸 온 호박전을 받아 작게 갈라서 입에 마구 몰아넣었다. 우걱우걱 먹는 내가 한없이 귀엽게 보이는지 할머니는 계속 미소를 지으신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아직 들뜬 기운이 남아 아파트 복도로 나왔다. 곧 있으면 여름 방학이었다. 내 능력으로 할머니를 도와드릴 방법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가게 안에서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고 도움이 될 게 뭐가 있을까? 무거운 음식 재료를 옮길 때 좀 도와드릴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해봤다.
그때 우연히 밤하늘을 보는데, 어느새 노란 공 톤토가 달 옆에 나타나 나를 보여 씽끗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내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떠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걸 본 톤토는 입이 거의 귀에 걸릴 정도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내 눈에 톤토는 한쪽 팔을 동수의 얼굴을 하고 있는 달의 어깨에 걸치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수는 정말 동그란 얼굴이 달을 닮았었다.
‘동수야 잘 있니? 나 보고 있어? 난 지금 떠 있다구!’
그날따라 공기 냄새가 좋았다. 콧구멍을 크게 벌려 있는 힘껏 들이마시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동수와 톤토가 하늘에서 특별히 내려 보내준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많은 별들도 나를 축하해주려는 듯 초롱초롱 다양한 빛으로 반짝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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